오늘 남북관계자들이 개성공단과 관련하여 만났지만 아무런 성과없이 22분만에 끝나고 말았습니다. 북한은 '서울 50km'발언 등 연일 강경한 어조로 남측을 압박하고 있습니다다. 과연 언제부터 남북관계가 이렇게 뒤틀리게 된 것일까요?

예전에 읽은 신앙서적에서 '하나님과의 관계가 무너졌다고 느끼는 순간, 바로 가장 마지막 하나님께 나아갔던 곳으로 돌아가라' 문구가 있습니다. 대결지향적인 현 남북관계는 분명 통일을 향한 길에서 벗어난 것처럼 보입니다.

  그렇다면 2007년 남북정상회담으로 거슬러 올라가 볼까요?자료를 정리하다가 남북정상회담 준비기획단에서 만든 '2007년 정상회담 해설'이라는 문건을 다시 살펴 보았습니다. 왠지 이 중요한 문건이 사문화되는 것 같아 아쉽습니다.



이후 10월 11일 미국은 북한을 테러지원국에서 해제하게 되고, 북한핵폐기와 6자회담의 재개 등 장미빛 평화를 이루는 듯 보였습니다다. 조심스럽지만 금강산 관광재개와 개성공단이 활성화되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라는 예측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2008년 2월 26일 뉴욕필하모닉 오케스트라가 평양에서 공연을 갖게 될 것이라는 발표가 있었습니다. 이 무렵 라이스 국무장관의 평양방문과 북미관계정상화에 대한 전망이 있었지요.  

그러나 2007년 12월 남측에서는 보수적인 이명박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이 되면서 지난 10년 간 주요 성과인 남북관계에 대해 전면적인 재검토가 불가피하게 되었습니다. 당시 통일부를 없애려고 까지 하였으니...이후 남북관계는 더 설명이 필요없을 것입니다.(당시 북한은 이명박 대통령에 대한 비난이나 언급을 자제하고 있었는데, 이 당시만 해도 남북관계 개선을 통해 식량난을 해결하려는 분위기가 있었습니다.)
출처: 연합뉴스

일설에는 이명박 대통령 취임식에도 김영남 위원장이 방문하려고 하였으나, 실무진에서 검토 후 모두 무산되었다고 합니다. 아무래도 보수층의 지지로 당선된 이명박 대통령으로서는 당선 후 얼마되지 않아 갑작스런 입장변화가 부담이었겠지요.(실용주의자인 이명박 대통령의 결단이 정말 아쉬운 순간이었습니다.) 그러나 이 때부터 특히 2008년 3월 말 '비핵개방3000'이라는 북한의 자존심을 뭉개는 발표를 하게 되지요(이 때 조금 주의를 기울여 '상생과 공영'이라고 발표했으면 어땠을까요? 또한 아쉬운 대목입니다.) 개성공단 문제 역시 실용주의적 입장에서 북의 입장변화를 요구한 것에 북한이 반응하지 않자 북한 노동자용 기숙사 거부, 2단계 추가 확장 중단, 개성공단을 대체할 나들섬 프로젝트 추진 등 북한을 압박하는 조치 역시 문제가 있다고 여겨집니다.

2008년 2월 평양에서 미국의 국기과 국가가 연주되는 모습을 보면서, 영원한 우방이나 적국은 없다는 말이 새삼 다가왔습니다. 미국국가연주가 끝나고 참석한 북한사람들이 기립박수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습니다. 과연 그들은 미국국가를 들으면서, 또 박수를 치면서 무슨 생각이 들었을까요?(나중에 통일되면 꼭 물어보고 싶다.)
그러면서 앞으로의 남북관계도 어떻게 바뀔 지 모르니 나도 세월을 아껴 미래를 철저하게 준비해야겠다는 다짐을 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러나 예상되었던 라이스 국무장관의 방북은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북미관계개선이 한반도 평화체제로 가는 핵심이라고 생각하는데 아쉬운 대목입니다. 테러지원국해제->북미관계정상화->정전협정을 종전협정 또는 평화협정으로 변경->남북평화체제 이런 프로세스를 예상했었거든요.
   북미관계가 뒤틀린 데는 개인적으로는 아마도 당시 핵기술을 시리아에 제공했는지에 대한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문제에 대해서는 2007년 9월
12일 미국의 '뉴욕타임스' 신문이 북한과 시리아 간의 핵 협력 의혹을 처음으로 보도했습니다. 미국 정부는 북한이 시리아의 핵 개발을 지원했으며, 이를 파악한 이스라엘이 전폭기를 동원해 문제의 핵 시설을 파괴했다고 보고 있었는데, 북한이 미국이 납득할 만한 충분한 설명을 하지 못한 듯 보입니다.    

  아뭏든 평양공연은 끝이 났고, 김정일 위원장은 공연 다음날 아침 갑자기 평양주재 중국대사관을 방문하여 사진 한장을 찍습니다. 남북관계가 틀어지고 북미관계가 표류할 조짐을 보이자 중국과의 관계개선 사인을 보낸 것이지요. 2008년 6월 중국의 5세대 지도자 시진핑 국가 부주석이 첫 공식방문으로 평양에 옵니다. 그리고는 대규모 원조를 약속합니다. 중국으로서도 미북관계개선을 그냥 지켜만 보고 있을 수 없었고, 북한에 대한 영향력을 잃고 싶지 않았을 테니까요.
출처: 한겨레
이후 금강산 관광객피살사건에서 개성공단남측관계자 철수, 최근 미사일 발사까지 쭈---욱  어려운 시간을 보내고 있지요.(더 길어질 것 같아 이쯤에서 급하게 마무리합니다. 간만에 쉬는 시간인데...너무 에너지를 쏟은 듯 싶네요....급피곤...) 개인적으로 남북관계는 이명박 정부의 입장변화나 북미간의 획기적인 관계개선이 없는 한 남북관계는 한동안 냉각기를 갖게 될 것 같습니다. ㅜㅜ

지난 주 무한도전이라는 프로그램에서 이휘재의 인생극장'을 패러디한 방송을 재미있게 보았습니다. 만약 과거 몇 번의 중요한 결정순간에서 지금과는 다른 선택을 했다면(물론 가정이지요...ㅠㅠ) 현재 남북관계와 동북아정세는 어떻게 달라져 있을까요?
Posted by heavymango
이만열 교수님의 글입니다.

Posted by heavymango

이번 독일을 방문하는 목적은 그동안 책으로만 배웠던 동서독 통일과 통일 후 독일의 변화상을 직접 확인하는 것이었습니다. 특히 동독 주민들과 동독지역의 변화 모습을 보고 싶었습니다. 일단 베를린에서는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라는 옛말대로 시내에서 분단의 흔적을 찾기는 쉽지 않았습니다. 베를린의 옛 동독지역 중심가인 포츠담 광장에는 우중충한 회색건물들이 자취를 감추고, 말끔한 첨단 고층건물들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었습니다.(포츠다머 플랏츠라는 대규모 재개발 사업이 있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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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를린 여행 안내 센터에 문의하여 베를린 장벽이 남아있는 찰리포인트라는 곳을 찾았는데, 한참을 헤메고 나서야 겨우 도착할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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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리 포인트는 미군의 검문소가 있던 곳으로 지금은 도로 가운데 검문소가 남아 있으며, 그 주변에 베를린 장벽 박물관, 그리고 약 1km정도 베를린 장벽을 보존하였습니다. 직접 분단의 현장을 가서 보니 우리도 하루빨리 통일을 이루어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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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 직후인 통일 이후 1년 만에 동독지역의 생산성은 통일 이전의 3분의1 수준으로 곤두박질했고, 동독 근로자의 월 평균수입은 1370마르크로 서독 근로자의 55%에 불과했지만, 올 들어 88%(2470마르크)까지 접근했다고 합니다. 옛 동독지역 많은 사람들이 구조조정 등으로 실직하거나, 보다 많은 기회를 찾고자 베를린 같은 대도시나 서독지역으로 이주하였다고 합니다. 실제로...드레스덴이라는 구 동독지역을 방문했는데, 관광객을 빼면 젊은이들을 찾아보기 힘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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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질 무렵 아내와 선착장 옆 까페에서 아이스크림 먹었던 풍경이 기억나네요...여긴 러시아의 상트페테르부르그와 비슷한 느낌이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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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떠난 독일애(플로라구....6주동안 연구소에 있었어요)가 그러더군요....음식에 비해 음료값이 엄청 비싼데, 꼭 시켜야 한다고...안그럼...정말 매너없는 사람인 것처럼 위아래로 쳐다본다고 하네요....ㅠㅠ 가난한 여행자인 우리는 한국에서 처럼 둘이 하나 시켰는데....ㅠㅠ 웬지 더 필요한 게 없냐는 질문이....그런거였나봐요...헉


통일에 대한 독일인들의 설문조사에서 지속적인 노력을 통해 동서독 주민의 내적 통합이 꾸준히 이뤄져 지금은 서독 주민 81%, 동독 주민 68%가 자신을 서독인이나 동독인이 아닌 `독일인'으로 인식하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고 합니다.(한겨레 기사내용)


제가 봐도 이제는 누가 동독출신인지 겉으로 봐서는 전혀 분간할 수 없었습니다. 적어도 외향으로는 통일이 이루어진 것처럼 보였습니다.(내면적인 갈등은 분명히 남아있을 것이라고 여겨졌으나, 구체적으로는 사생활침해가 될 까 싶어 잘 물어볼 수 없었습니다.)

Posted by heavymango
작년 11월 다니는 학교에서 통일부의 협조를 받아 도라산역과 판문점을 방문하였다.

신촌에서 도라산까지는 채 한시간도 걸리지 않았다. 심지어 최근 이사한 우리 인천집보다 더 가까웠다...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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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말 평양에 다녀온 적이 있었다. 직항으로 순안공항까지 50분 만에 갔는데....205km이면 서울에서 대전과 대구 중간 쯤 될 듯 하니...기차로 만약 ktx가 연결된다면 역시 1시간이면 가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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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록 지금은 중단되었지만 얼마전까지 남북을 오가던 한 칸짜리 화물열차....오후 1시반-2시쯤 하루 한번 운행을 마치고 정비중인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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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성공단에서 열차로 화물을 운반하려면 개성공단-판문역-도라산역 등으로 여러번 하역작업을 해야 하기 때문에 현재로선 차량에 비해 경쟁력이 없다. 따라서 상징적으로 한 칸만 운행한다고 했다. 그러나 만약 경의선이 중국으로 러시아로 유럽으로 연결된다면.....배에 비해 월등한 경쟁력을 지니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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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쯤 우리 외할아버지네가 사셨던 황해도에 가볼 수 있을까???

'정지'라는 간판이 못내 마음을 아프게 한다.


하루속히 남북이 경색된 대결구도를 극복하고 서로 화해와 협력함으로 상생의 길을 이루어 갔으면 하는 바람이다.

Posted by heavymango

Common Easter Prayer of the Churches of North and SouthKorea

April 2009

God of Resurrection and Life!

Today we face many difficulties in the journey toward, peace, reconciliation and cooperation

which we have been walking with many tears and prayers.

Our steps towards our yearned-for homeland are blocked.

North and South, we are moving backward toward conflict and confrontation.

War clouds hang over us in this atmosphere of disruption, misunderstanding and conflict.

Oh God, nevertheless we pray with full trust to you, God of Resurrection and Life.

God of Mercy!

We now first confess our sin.

While we say that we want to let the flower of national reconciliation and peaceful reunification bloom, we have not been able to be the seed that falls to the ground to yield the bloom.

While with our mouths we speak of national reconciliation and of being one,

in our hearts we have criticized, despised and blamed the other side.

Rather than follow God,

we have sought only material things, military strength, and logic of power;

we have closed our eyes to national suffering and the reality of division, pursuing our own easy life.

God of Justice!

Help us to work for your justice and peace;

let us not surrender to injustice in fear of the powers of darkness and death;

lead us to stand firmly against those who speak of a false peace and against the powers of division.

Awaken us to recognize and crushthe false peace and to build a history of true peace.

God of Life!

Let our people become one independently and live the life of reconciliation instead of confrontation.

Guide us to struggle against the power of division and cultivate a history of peace and reunification and national resurrection.

Lead us in the North and the South to wholeheartedly keep and implement the June15,2000andOctober4,2006JointStatements.

We pray in the name of Jesus Christ

who even today is victorious over the power of death and injustice,

who cares for those who suffer and wipes the tears of those who weep,

who works as the Resurrection, Life and Holy Spirit.


This Common Prayer was jointly written by the National Council of Churches in Korea(NCCK) and the Korean Christian Federation(KCF)

Posted by heavymango

얼마전 북한최고인민회의에서 대의원선거(3월8일) 및 김정일을 국방위원장으로 재추대(4월9일)하였다.


최고인민회의
(最高人民會議)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입법권을 행사할 수 있는 최고 주권기관이다. 1946년에 발족되었다. 대한민국의 국회에 해당되는 곳으로 지역이나 군으로 이루어진 선거구마다 선출된 대의원에 의해 구성된다. 조선로동당에 소속된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대의원의 임기는 5년(1992년 4월까지는 4년)이고, 인구 3만 명당 1명이 선출되며, 제11기 대의원 수는 687명이었다. 대의원 선거는 대체로 100% 투표율에 100% 찬성률로 나타난다. 일반 법령과 결정은 재석 과반수, 헌법 수정 보충은 재적 2/3의 찬성으로 의결된다. 기구에는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와 부문별위원회가 있다. 이중 부문별위원회는 법제위원회, 예산위원회 등이 있다. <출처: 위키디피아>

올해 3월에 있었던 제12기 최고인민회의 대의원 선거에서는 이상의 주요인사들이 대부분 재선되었다. 사실 최고인민회의는 2008년 8월에 실시되었어야 하나, 김정일 위원장의 건강문제와 미국의 테러지원국 해제 시점이 맞물려 있어 늦춘 것으로 보인다. 선거에서 선출된 이들은 '2012년 강성대국'을 이끌 책무를 부여받게 되었다.  전반적으로 국방위원회의 권한이 강화되었다는 것은 '체제유지와 북한주민결속'을 위한 조치로 여겨진다.

한편, 후계자로 지목되고 있는 김정일의 세번째 아들 김정운이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이 되는가도 이번 선거의 관심이었는데, 결과는 '아니오'였다. 사실 김정일도 후계자로 확정된 후 2년이 지나서야(1982년) 대의원으로 선출되었기 때문에 아직 시기상조라고 여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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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부위원장: 조명록(유임)
부위원장: 김영춘(유임), 리용무(유임), 오극렬(2월 임명)
위원: 전병호(유임), 김일철(유임), 백세봉(유임), 장성택(신임), 주상성(신임),우동측(신임), 주규창(신임), 김정각(신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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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각에서는 후계작업과 관련한 모종의 변화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으며, 특히 이와 관련, 장성택 노동당 행정부장이 국방위원회 위원으로 선출되고, 최근 김 위원장을 빈번히 수행한 점이 부각되고 있다.

한편, 남북간 경제협력 사업을 담당하던 민족경제협력위원회(민경협)의 위원장을 임명하지 않고, 민경협이 내각기구에서 제외된 것도 주목할 만한 사실이다. 이명박 정부들어 경색된 남북관계를 반영하는 듯 하며, 이러한 북한의 조치를 미루어 볼 때 남북관계는 당분간 현상태보다 개선되기는 어려울 듯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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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만열 교수님의 kpi연례보고 발표자료입니다.(바로가기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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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러브포앤과 유니프레이어닷컴, 통블로그 때문에 정작 내 블로그에는 소홀했었네요...ㅠㅠ

오늘 북한 미사일 발사와....김정일 국방위원장의 호화요트 구입시도...기사들을 보면서....
참으로 막막하고....어찌해야 할 바를 모르겠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가난하고 병든 자, 눌린 자, 고통받는 자들에 대한 특별한 관심과 사랑을 보이셨다. 이러한 예수님의 사랑을 본받아 북한을 품고 사랑을 나누는 것이 사순절을 맞아 그리스도의 고난을 깊이 묵상하고 그 뜻을 실천하는 길이라고 생각한다. 지난 주 예배 중 불렀던 “허무한 시절 지날 때 깊은 한숨내쉴 때...고아같이 너희를 버려두지 않으리. 내가 너희와 영원히 함께 하리라....우리 인생 가운데 친히 찾아오셔서 그 나라 꿈꾸게 하시네.”라는 찬송의 가사처럼 하나님께서 북한 땅 가운데 역사 하시기를 기도해야 할 것이다. 낙심되고 아무런 소망이 없어보이는 그 때에라도 꿈꾸게 하시는 성령의 능력을 힘입어 믿음의 눈으로 북한을 바라보아야 한다. 우리 하나님께서 반드시 “정녕 기쁨으로 그 단을 가지고 돌아오는(시편 126:6)” 날을 우리에게 허락하실 것이다.

고통받고 있는 북한 주민들에 대한 안타까운 마음은 계속 커져만 갑니다. 속히 하나님께서 이 땅을 회복시키시기를 기도합니다.

이러한 간절한 소망을 담아 북한노래 한 곡 올려봅니다.(링크, 여기를 누르세요)

<1절>
백두에서 한라로 우리는 하나의 겨레
헤어져서 얼마나 눈물 또한 얼마였던가
잘있으라 다시 만나요. 잘 가시라 다시만나요
목 매어 소리칩니다. 안녕히 다시 만나요

<2절>
부모형제 애타게 서로 찾고 부르며
통일아 오너라 불러 또한 몇해였던가
잘있으라 다시 만나요. 잘 가시라 다시만나요
목 매어 소리칩니다. 안녕히 다시 만나요

<3절>
꿈과 같이 만났다 우리 헤어져 가도
해와 별이 찬란한 통일의 날 다시 만나자
잘있으라 다시 만나요. 잘 가시라 다시만나요
목 매어 소리칩니다. 안녕히 다시 만나요

 

Posted by heavymango

지난 9월9일 신사참배회개와 평화통일을 위한 세미나를 시작으로 11월 '남북관계경색을 우려하는 기독인의 입장' 성명서 발표...12월 이에 대한 세미나 개최....숨가쁘게 달려왔는데, 오는 3.1절 90주년을 맞이하여 평화통일을 위한 기독인 선언의 서명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오는 19일 이에 대한 기자회견이 있을 예정입니다. 저는 박영환 교수님과 함께 성결교단 관계자들에 대한 서명작업을 하고 있는데요....아시아 로잔위원회 조종남 박사님, 정진경 전 총회장님, 최종진 기독교학회장 님들이 참여하시기로 하였습니다. 현재까지

강경민 목사(성서한국 이사장, 일산은혜교회)

손봉호 총장(동덕여자대학교)

이만열 교수(숙명여자대학교 명예교수, 전 국사편찬위원회 위원장)

홍정길 목사(남서울은혜교회)

정종훈 교수(연세대학교 교목)

김삼환 목사(NCCK회장, 명성교회)

이동원 목사(지구촌교회)

길자연 목사(칼빈대학교 총장, 왕성교회)

김명혁 목사(강변교회 원로)

유관지 목사(감리교 북한교회연구원) 등이 참여의사를 보이셨다고 합니다.


이 사역을 진행하면서 감사한것은 통일운동/북한선교를 통해 기독교 진보와 보수가 연합하고 동역하는 계기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90년 전 소망없는 이 민족가운데 희망의 도전을 주었던 3.1운동처럼 이번 성명이 대결구도로 치닫는 현 남북관계가 변화되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무엇보다 기독인들이 말 뿐 아니라 삶으로 헌신하는 모습을 보여주었으면 좋겠습니다.  

이 일을 실제적으로 준비하시는 허문영 박사님의 인터뷰가 있기에 링크로 걸어봅니다.

인터뷰바로가기

Posted by heavymango

1. 기독교 북한선교포탈 러브포앤 오픈

2. 남북관계 경색으로 인한 기독교남북교류 연기/ 중단

3. NCCK 부활절 및 남북공동기도주일 연합행사

4. 9.9 신사참배 70년 참회와 평화통일을 위한 기도회

5. ‘남북관계 경색을 우려하는 기독인의 입장’ 성명

한국교회의 신사참배 참회는 92년 6월18일, 한국교회의 '거목'이었던 고 한경직 목사께서 종교계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템플턴상의 수상을 축하하는 예배자리에서 "저는 일제 때 신사 참배를 행했으나 여태껏 참회하지 않았다"면서 "반세기 전에 지은 우상숭배의 죄를 참회한다"고 고백함으로 큰 반향을 일으켰다. 이어 2006년 1월에는 기독교대한복음교회가 "초대 감독이었던 최태용 목사가 창씨개명을 하고 친일잡지에 친일논설을 기고했다"며 개신교단 중 처음으로 교단의 친일 행적을 반성했다. 지난해에는 기독교대한성결교회 총회가 3·1절을 기념해 신사참배 행위에 대한 죄책고백 선언문을 발표했고, 한국기독교장로회는 지난해 9월 총회때 신사참배 행위를 공식 사과했다.

이러한 한국교회의 과거사에 대해 신사참배 70주년을 맞는 9월 9일 약 20여 개 단체가 연합하여 '신사참배 70년 참회와 통일을 위한 세미나 및 기도회'를 진행했다. 나는 협력단체 소속으로 짐도 나르고, 자료집도 나누어주고.....정신없이 뛰어다니느라 정작 기도는 열심히 못했던<?...ㅜㅜ> 기억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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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선언이 단순히 일회성 이벤트로 끝나지 않기 위하여 9.9실천위원회가 조직되었고, 구체적인 실행지침이 선포되었다.

우선 기존 오프라인 기도모임인 통일건국기도회와 연합하여 통일기도회로 확대하였고, 오프라인 기도운동을 일으키기 위하여 웹 2.0을 기반으로 하는 통일기도메일 사이트를 만들기도 하였다.  덕분에 제가 하던 러브포앤 사이트와 겹치는 부분이 생겨서....고민하다가 협력하기로 결정하였습니다.(그동안 제한된 인력과 재정으로 어려움이 있었는데, 러브포앤이 사역의 씨앗이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 앞으로 러브포앤은 한국기독교통일포럼과 서울신대 북한선교연구소의 홈페이지로 간소화할 예정입니다.)


이 사역들이 진행되는 회의 과정에서 한 분의 발의로 현 남북관계경색을 우려하는 성명서 발의 작업이 시작되었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남북관계 경색을 우려하는 기독인의 입장’ 성명에 관한 제 글을 참고하세요^^

이 성명서가 기독교의 진보 및 보수를 아우르기에 상당한 파장을 일으켰고, 지난 12월 30일 이 성명서의 내용을 구체화하기 위해 대토론회가 열리기도 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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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9.9실천위원회가 '평화와 통일을 위한 기독인 연합'(가칭)으로 확대되고, 1월 중순 통일기도메일서비스 유니프레이어닷컴이 오픈되며, 오는 3.1일 통일을 위한 연합행사 등이 순차적으로 이루어진다면 그동안 제각각 흩어졌던 기독교통일단체들이 기독교통일세력으로 결집되는 귀한 연합과 동역의 자리가 될 것이다. 이 귀한 사역의 자리에 함께 할 수 있어 하나님께 감사드린다.

Posted by heavyman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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