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5.7 한국기독교회관 대강당에서 열렸던 실천신학대학교 ‘제 7회 에큐메니칼 아카데미 심포지엄’ 중 연세대 박영신 교수의 발표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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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heavymango
이만열 교수님의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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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heavymango
2009.04.10 12:00
2008년 2학기 북한문학, 특히 소설에 대해 공부할 기회가 있었다. 북한 소설을 직접 읽어볼 수 있는 특별한 기회였다. 물론 소설 '살아계시다'와 같이 북한 문학이 주체이후 김일성 김정일 부자의 신격화와 우상화의 도구가 된 것은 사실이나.....나름의 문학적 재미를 주는 것들도 간혹 볼 수 있다. 개인적으로는 한웅빈의 '차창에 비낀 얼굴들'이 살랑살랑 사람을 기대하게 하면서...은근히 재미있었다.(언제 시간되면 소설리뷰를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서론 - 북한문학의 발단

 북한문학이란 북한이라는 정치, 사회 체제 아래서 씌어지고 읽혀 온 문학이다. 김일성에게 민족의 ‘영도자’라는 호칭이 붙기 시작한 시기는 1946년 5,6월경이다. 한설야의 단편소설「혈로」(1946)에서부터, 1972년 첫 권이 나온 이래 오늘날까지 씌어지고 있는 <불멸의 력사>총서로 이어지는, 김일성을 영도자로 하는 역사 쓰기는 북한문학의 핵심 과제였다. 혁명역사의 단편인 일화는 역사 꾸미기의 근거를 제시하고 방향을 가리키는 것이므로 북한문학의 발단으로 작용했다고 본다.




- 새 제도의 성립 ; 민주 건설기 (1945~1950)


 해방과 더불어 이북의 모든 사람들에게 새로운 방향으로 변화가 시작되었음을 느끼게 한 사건은 토지개혁이었다. 김우철은 서정시「농촌위원회의 밤」(1946)에서 새 제도가 가능하게 한 새 삶을 과거의 삶과 대비했다. “농사꾼끼리 한자리에 모여/ 살아나갈 앞일을 의논해 본 적이/ 어느 한 당대 꿈엔들 있었던가.” 새 제도가 새 삶을 살게 함으로써 새 인간이 되는 ‘성장’의 이야기는 새 역사 쓰기의 형식으로 자리 잡는다. 이기영의 단편소설「개벽」(1946)은 낙후한 농민도 변화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토지개혁이라는 기적은 예상하지 못한 것이었고, 그것은 ‘천지개벽’을 뜻했다. 성장은 결국 사상의 문제였다. 이동규의 단편소설「그의 승리」(1946)는 사상이 역사 따라잡기를 요구하고, 새 시대가 요구한 성장의 방향이 지정되어 있었음을 보여준다. 새 역사의 건설은 김일성이 일제와 맞서 영웅적으로 싸우고 비범한 통찰과 신묘한 전략으로 승리를 거두어 온 결과이자, 그 과정에서 구상된 것이 되었다.


 보천보 전투(1937.6.4)라는 역사적 사실 을 토대로 한 서사시「백두산」(1947)에서 조기천은 “뉘가 인민을 위해 싸웠느냐?/ 뉘가 민전의 첫 머리에 섰느냐?”는 장중한 어조의 수사학적 질문을 앞세워, 김일성의 항일투쟁이 곧 건국의 기원이자 그가 새 역사의 주인공으로 나서야 할 이유임을 밝혔다. 이 건국서사시는 숭엄성에 입각한 집단적 일체감을 조성했다는 점에서, 화려한 수식어로 김일성을 칭송하는데 그친 시들과 차원이 달랐다. 무엇보다 이 작품은 김일성을 메시아로 제시한 것이다. 민족의 성소(聖所)인 백두산은 김일성에게 신화적 위엄을 부여하는 배경이었으며, 백두산을 근거로 항일무장투쟁사를 벌임으로써 새 나라의 기틀을 다진 것이다.


『우리의 태양』에서부터 김일성은 ‘태양’으로 칭송되기 시작했고, 박영보의「태양을 기다리는 사람들」(1948)은 이 태양이 어떤 의미를 갖는 것인지를 구체적으로 제시한 희곡이다. 1930년대 초 간도지방을 배경으로 한「유격대」(천정송, 1948)는 반 민생단(民生團) 투쟁을 이야기하는 등 항일무장투장투쟁사의 ‘복원’에 초점을 맞춘 단편소설이다. 한설야의「개선」(1948)은 김일성의 형상을 집중적으로 그려낸 첫 경우다. 김일성을 ‘대보름 달덩이’에 비유한다. “그 잘 웃는 얼굴, 웃을 때마다 두 볼에 파지는 인정머리 있고 아름다워 보이던 보조개와, 유달리 애티 있게 보이던 덧니, 억실억실하고 무한히 슬기 있어 보이던 눈”은 그의 위대함이 선량함을 바탕으로 한 것임을 강조하고 있다.


 파시즘에 대한 소련의 승리는 인민의 자유롭고 평화로운 삶을 가능하게 해준 “세기의 개가”4)로 찬양되었다.「칠현금」(김사량, 1945)의 ‘이와노브’ 대위는 ‘일본놈들’ 때문에 척추가 바스러지는 부상을 입고 몇 년 동안 버려지다시피 목숨을 이어온 노동자의 척추를 바로잡는 기적을 이루어낸다. 한설야의 단편「얼굴」(1948)은 소련군을 사심 없는 구원자로 그리고 있다. 도망치는 일본군들이 불을 질러 위험에 처한 수감자들을 소련군이 구출해주는 장면에서, 구원을 받는 등장인물은 강한 ‘사모’의 감정에 소련군의 손에 입을 맞추고 그의 얼굴을 어루만진다. 소련을 사회주의의 모국으로 간주하는 태도는 조소친선을 주제로 한 문학작품들이 전제하고 있는 바였다.


 그러나 북한이 보는 남한은 아직도 미군정에 의해 지배되고 식민탄압이 계속되는 곳으로 보았다. 38이남을 되찾는 것이 북한의 또 하나의 민족적 과제였다. 신한공사(新韓公社)는 미군정이 일본인들의 착취방식을 답습하여 설치한 악명 높은 동양척식회사의 다른 이름이었다. 남궁만의「하의도」(1947)는 신한공사의 횡포에 맞선 전라남도 무안군 하의도의 소작쟁의를 그린 희곡이다. 김사량의「남에서 온 편지」(1948)는 기적이 이루어진 38이북의 눈으로 암담하고 비참한 남한 현실을 비춘 소설이다.


 남한의 매판세력들은 풍자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송영의 희곡「금산군수」(1949)는 적대적 존재를 시대착오적 편집광이나 도덕적 백치로 그리는 풍자문학의 틀을 세운 작품이다. 그러나 남한에서의 투쟁을 그리는 일은 해방 후의 서울을 체험한 남한 출신 작가들이 자신들의 과제로 생각했던 바다. 김영석의 장편소설『격랑』(1948)과 이동규의 단편「그 전날 밤」(1948)은 이렇게 씌어진 경우다. 함세덕은 희곡「산사람들」(1950)로 제주도의 4.3항쟁을 그렸다.


 남한의 빨치산 투쟁은 ‘민주 기지’인 북한이 큰 역할을 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는 것이었다. 4.3항쟁을 그린「한나산」(강승한, 1948)이나「항쟁의 려수」(조기천, 1948)과 같은 서사시는 단선을 저지하고 통일정부를 수립하려는 남한 인민들의 투쟁 역시 민주기지로서의 북한과 김일성을 향한 믿음을 통해 전개되고 있는 것으로 그렸다. 박태민이「제2전구」(1949)에서 그려낸 두 젊은 노동자 ‘경수’와 ‘영자’의 내력은 그들이 어떤 길을 밟아 빨치산이 되었고 어떻게 새로운 윤리를 획득하였는가를 보여준다. ‘경수’는 죽어가면서도 사로잡힌 경찰과 ‘반역자’들이 처단되는 광경을 자기 눈으로 보게 해 달라고 간청한다. 6.25의 발발을 눈앞에 둔 무렵 이태준은「고향길」(1950)이라는 중편소설에서 자신의 어린 아들이 ‘국방군’에게 맞아 죽는 모습을 숨어서 지켜보아야 하는 빨치산 전사의 고통스런 상황을 그렸다. 훼손의 시대에 대한 극단의 자기 연민과 분노를 표현한 것이다.



- 시련의 경험 ; 조국해방전쟁기(1950~1953)


 북한이 6.25전쟁을 ‘세계제패의 야망을 갖는 미국의 침입으로부터 인민의 자유와 조국의 독립을 지키려는 싸움’으로 규정하면서 ‘해방전쟁’, 혹은 ‘조국해방전쟁’으로 명명되었다.  남한은 회복해야 할 ‘공화국의 남반부’였다. 이에 북한에선 국토의 ‘완정(完整)’이 과제로 제기된다. 이태준의「먼지」(1950)는 완정론을 대변한 단편소설이라 할 수 있다. 그는 38선 이남의 실상을 지옥으로 그렸다. 이갑기의 단편「38선」(1949)에서도 좌익운동에 참여했던 한 여인이 남편이 있는 평양으로 가기 위해 남한을 탈출하는 긴장된 여정을 기록, 38선은 잔혹한 폭력이 판치는 세상과 바른 이상이 실현된 세상을 나누는 경계로 보았다. 이후 이기영의「38선」(1952)에서 서울과 평양, 그리고 38선으로 갈린 강원도 농촌을 무대로 해방직후 남북한 현실과 변화의 과정을 전체적으로 조망하고 있다.


 종군에 나선 100여명의 작가들에겐 적을 무찔러 나가는 곳에서 줄을 잇는 숱한 기적을 전하는 임무가 주어졌다. 김사량의 ‘종군기’에서 읽게 되는 것은 전쟁의 속도감이다. 김사량은 개전 바로 이튿날 가장 앞서 종군길에 올라「서울서 수원으로」,「우리는 이렇게 이겼다」,「지리산 유격구를 지나며」,「낙동강반의 전호 속에서」,「바다가 보인다」등을 단 제목으로「로동신문」에 개제하였다.


 이원조는 숱한 영웅들의 실기(實記)를 소개해야 할 필요를 지적하면서, 작가들이 노트에 적은 영웅의 이력서와 전투 상황과 몇 가지 담화로 작품을 쓰려는 “노트식 영웅 제조 방법”을 비판했다. 이에 반해 한요는 실재한 영웅을 그리라는 이원조의 주문을 잘못된 것으로 몰며, 유항림의「진두평」(1951) 같은 실전(實傳)을 ‘있는 그대로의 추구에서 한 걸음도 벗어나지 못했다’고 비판했다. 영웅전은 대중적 영웅주의에 입각한 것이어야 했다. 리원우의「지금은 총 잘 쏘는 사격수」(1950)처럼 평범하게 “논밭 갈던 우리네”가 “미국놈 사냥”에 나서 “이름난 사격수”가 되었다는 이야기는 반복되었다.


 또한 전사들의 형상에서 소년의 이미지는 새 시대와 함께 성장한 새 세대로 표현되었다. 그들은 예상하기 힘든 적극적인 행동을 감행한다. 김영석은「화식병」(1951)에서 희극적인 인물 ‘박씨근’을 등장시켜 탄우를 뚫고 전투원에게 밥을 나르는 저돌적인 모습을 그렸다. ‘몸집이 작고 가늘 뿐 아니라 얼굴도 예쁜’ ‘만구’(윤세중,「편지」,1951)는 정찰을 나갔다가 미군의 목을 물어 죽이며, 열아홉 살밖에 안된 상급 전화수(박웅걸,「상급 전화수」,1952)는 폭격으로 끊어진 전화선의 양쪽 끝을 자신의 두 손으로 붙들어 통신을 보장한다. 윤세중의「구대원과 신대원」(1952)에서 ‘키가 작달만하고 허리가 날씬한’ 신대원은 양키를 잡는 구대원의 무용담을 재미있는 동화로 듣는다.


 영웅을 그리면서 특별한 일화나 예사롭지 않은 장면을 살리기 위해 ‘집중적 인상화’의 관점이 도모된다. ‘발견’의 형식을 수반하여 인물과 정황을 배치해 작자와 독자가 그들을 뒤쫓는 관람자가 된다는 점에서 이 형식은 영화적이다. 실제로 많은 소련 영화가 상영되었음을 생각할 때, 윤시철의 단편「네 번째 돌격」(1951), 김만선의「당증」(1951)이나 황건의「불타는 섬」(1952)등은 영화적 감각과 장면 제시의 수법이 집중적 인상화의 원천이었다.


 그러나 전쟁에서 영웅의 희생은 불가피했다. ‘혁명적 비극’으로 불리게 되는 영웅이 희생되는 양식은 시련의 시기를 그리는 방법의 하나였다. 김순석은「귀향」(1950)에서 적이 파괴한 고향 거리에 돌아온 화자를 통해 “살아서 원쑤에게 고향을 내맡길게면/ 지켜 차라리 제 고향의 흙으로 남자!/ 가슴에 화약을 걷어 안고/ 원쑤의 지휘처와 더불어 흩어진// 흩어진 장부의 짙은 피로/ 이 땅을 한결 두터이 깔은/ 이 거리 사람들을 과연/ 죽은 사람이라 어찌 부르랴…” 고 외친다. 전쟁영웅 ‘리수복’이 등장하는 홍건의 희곡「1211」(1951)에서, 몸을 던져 적의 화구(火口)를 막은 리수복을 기리는 공식적 목소리는 ‘생명보다 더 귀중한 것을 위해 자기 몸을 바친’ 전사들에게 ‘영생불멸의 영광’을 수여하고 있다.


 또한 피점령지의 인민은 빨치산 투쟁을 펼쳐야 했다. 천세봉의「싸우는 마을 사람들」(1953)은 농민들의 빨치산 투쟁을 그렸고, 한설야의 장편「대동강(1-2부)」(1953)은 점령된 평양을 무대로 전개되는 ‘도시 빨치산’ 투쟁을 그렸다.


 그러므로 전쟁으로 인한 시련의 경험을 통해서 김일성의 항일무장투쟁사는 가장 숭엄한 역사가 될 수 있었다. 전쟁시기에 출간된『김일성 장군의 략전』(1952)은 그를 “민주 개혁의 제창자”이자 “승리의 조직자이며 고무자”로 규정했다. 그리고 전쟁시기동안 김일성을 부르는 호칭의 하나였던 수령의 의미는 문학을 통해 더욱 구체화되었다. 애국주의는 곧 김일성 장군을 향한 충성을 의미했다. 홍순철의「수령에의 헌사-해방구 인민들이 드리는 노래」(1950), 김순석의「수령」(1950)과 같은 시에서 수령은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넘어 언제 어디서든 인민들과 같이 있으며, 모든 인민들이 마음의 고향이자 지주로 삼는 존재로 표현되고 있다. 한설야의『력사』(1953)는 수령의 지도가 어떤 것인가를 우회적으로 나타낸다.  아동혁명단을 육성해 빨치산 교육의 체계를 세우는 이야기며, <조국광복회>를 결성하고 반민생단 투쟁을 벌이는 이야기, 아동극을 지도하는 김일성의 모습 등을 담고 있다. 이 소설에서 김일성은 신심과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 존재로 부각되고 있다. 스탈린과 모택동을 칭송하고 중국지원군의 고상한 기풍을 찬양하는 시집『전우의 노래』(1953)가 출간되기도 했다. 반면 미국 제국주의는 악의 근원으로, 풍자의 대상이 되었다. 한설야의『대동강』은 원자탄으로 인종 청소를 계획하는 미군 사령부의 장교를 그리고 있고,『승냥이』(1951)는 미국인의 본성을 탐구한 수작으로 평가되고 있다. 송영의 희곡「강화도」(1953)는 미국의 침략이 오늘만의 일이 아님을 그렸다. 백인준은 장편시「얼굴을 붉히라 아메리카여!」(1951)를 통해 미국의 지배세력을 히틀러의 후예로, ‘넥타이를 맨 식인종’으로 야유했다.


 조국해방전쟁은 결과적으로 북한문학에 부여되는 정치적 명령을 더욱 긴급한 것으로 만들었다. 김일성의 항일무장투쟁사는 이 전쟁을 설명하는 역사적 근거로 구체화 된다.




- 사회주의를 향하여 ; 전후복구와 사회주의 건설기(1953~1958)


전후 북한의 경우 사회주의는 충분치 못한 여건에서 추진되었다. 사회주의 건설은 ‘사상의 힘’을 원동력으로 ‘사상적으로’ 규정되어야 했다. 이에 반한 임화는 간첩이자 반동사상의 표상으로 매도되었다.「너 어느 곳에 있느냐」와「바람이여 전하라」,「흰 눈을 붉게 물들인 나의 피 우에」는 임화가 염전사상을 유포했다는 혐의를 입증하는 증거로 활용되었다. 이태준, 김남천, 박찬모, 설정식, 오장환 등의 남로당 계열의 문인들도 처형되거나 숙청된다.


 작가들은 투철한 당성을 발휘해야 할 존재로, 기업소와 농촌으로 파견되었다. 적을 향한 증오를 일깨우는 것은 복구가 시급하고 필연적임을 역설하는 방법이 된다. “우리는 잊지 않으리라/ 우리가 싸운 그 모든 날을…”이라는 외침이나, “한 장의 벽돌에도 한줌의 흙에도/ 쓰러진 전우의 뜻을 잇고/ 폐허된 거리의 울분을 심어/ 앞장서 가리라”9)는 다짐, “증오를 불러/ 더는 용서 할 수 없는/ 미국 강도의 만행을 웨쳤을 때/ 그들의 숨결도 가삐/ 두 주먹에 분노를 쥐고” 증산투쟁에 나섰다는 보고는 되풀이되었다. 공산주의는 사상의 근원으로 김광섭은「공산주의 태양 아래」(1957)작품을 통해 “갱도에 밤이 온 적이 없소/ 잎지는 가을 눈 오는 겨울/ 사시장 봄이요 노래라오/ 눈부신 공산주의 태양 아래”라고 표현한다. 유항림의 단편소설「직맹반장」(1954)은 새 것의 편에 서지 못한 낡은 인물을 생활의 구체성 속에서 살려낸 점이 주목을 받았다. 그러나 평론가들의 관심을 끈만큼, 작가가 낡은 것을 그리는데 너무 치중했다고 비판하고 있다. 이런 논의는 사회주의 건설을 그리는 사회주의 리얼리즘이 어떤 것이어야 하는가를 밝혔다. 변희근의「빛나는 전망」(1954)은 부정인물을 적절하게 그린 점에서 긍정적 평가를 받았다. 윤세중의「시련속에서」(1957)는 선진 기술 도입에 힘써 기술 증진을 꾀하는 전문지식인의 분투 과정을 그린 장편소설로 전후 복구의 핵심 과제를 그렸다.


 농촌에서 사회주의 건설은 상대적으로 큰 변화를 요구했다. 이동춘의 희곡「새 길」(1953)에서 제대군인이 고향에 돌아와 협동조합의 관리위원장을 맡아 애쓰는 이야기 형식을 취했다. 그러나 비평가들은 갈등이 뚜렷하고 심각하게 제시되지 않은 점을 지적했고, 한설야는 이 희곡을 갈등 제시에 실패해 도식주의로 흐른 경우로 평가했다. 서정시들은 풍요를 약속하는 사회주의를 예찬했다. 민병균의「나의 새 나의 고향」(1955)에서 낙원을 눈앞에 펼쳐보인다. 김순석의「황금의 땅」(1957)에 실린 시들도 그렇다. 이근영의 중편소설「첫수확」(1956)은 협동화 과정을 그린 교과서로 의미를 갖는다. 천세봉의「석개울의 새봄」(1958-1963)은 전후 북한 농촌의 개변 과정을 폭넓게 그린 3부작의 장편소설이다. 여러 인물들을 그려 북한 농촌에서 진행된 이 급격한 변화가 얼마나 극심한 갈등을 수반한 것이었던가를 엿보게 한다.


 전후 복구의 열의는 항일무장투쟁기나 전쟁 시기를 돌이키는 방식으로 또한 요구되었다. 위대한 과거를 그리는 내면적 형식은 서사시였다. 홍순철의 장편서사시「어머니」(1954)는 혁명적 어머니상을 그렸고, 민병균의「조선의 노래」(1955)는 마산전투에서부터 이른바 ‘전술적 후퇴기’와 그 이후의 ‘반돌격전’까지를 시간적 배경으로 그린 서사시다. 김학연의 서사시「소년 빨치산 서강렴」(1953) 역시 조국해방전쟁의 승리가 수령의 인도와 평범한 인민들의 헌신으로 인해 가능했음을 말하고 있다.


 또한 윤세중의 중편소설「도성 소대장과 그의 전우들 」(1953)을 비롯한 여러 영웅전들이 씌어졌고 영웅전을 발전시킨 일대기 형식도 시도되었다. 박태영의 희곡「리수복 영웅」(1956)은 ‘리수복’의 남다른 어린 시절을 조명한 짧은 일대기다. 이종순, 최건의 희곡「다시는 그렇게 살 수 없다」(1954)에서 당 지도원은 바른 정치적 입장이었던 것인가를 판정하고 몸소 실천해 보이는 인물이다. 한성의 희곡「어랑천」(1956)에선 보통 농민들도 특별한 훈련 없이 공작자로 활약한다. 그리고 위대한 과거를 장엄한 역사로 쓰려는 시도도 나타난다. 박웅걸의 장편소설「조국」(1956)에서는 빼앗겼던 땅을 되찾는 시련의 극복이라는 이야기로, 황건의 장편「개마고원」(1956)은 다양한 역사적 문맥들을 통해 제시된다. 장황한 모험과 극적인 승리의 이야기는 결국 위대한 과거가 항일무장투쟁을 기원으로 하는 것이었음을 말해준다.


 김일성의 항일혁명역사를 건국의 역사로 쓰려는 시도가 조직적으로 나타난 것은 반종파투쟁이 마감된 이후다. 한설야는 장편소설「설봉산」(1956)에서 1930년대 국내의 적색농민조합운동과 김일성의 항일무장투쟁을 연결했다. 농조 운동을 주도한 긍정인물들은 농민 운동이 무장투쟁과 유기적으로 연계되어야 할 것이라는 생각에서 김일성의 유격대로 들어갈 것을 결심한다. 그것은 곧 ‘혁명의 원 곬’을 찾아가는 것으로 묘사되었다. 이기영은 대하소설「두만강」(1954~61)으로 외세와 매판세력에 맞선 민중들의 민족해방투쟁사를 썼다. 이 소설은 위대한 과거 그리기를 민족사 쓰기로 확대한 것이었다. 민족해방투쟁사는 ‘유일한’이야기였고, 이 소설의 형식은 뒷날 김일성의 혁명역사를 문학으로 복원한다는 기치 아래 씌어지는 <불멸의 력사>총서를 예고하는 것이었다.


 이 시기는 사회주의 리얼리즘의 의미와 내용을 확인한 때였다. 때문에 사회주의 건설의 과정을 보고하는 것과 ‘위대한 과거’를 그려내는 것은 본질적으로 다른 것일 수 없었다. 1950년대 말 김일성의 단일지도체계는 확립되었다. 당은 1959년부터 1960년대에 걸쳐 당 중앙위원회 직속 <당역사연구소> 주관으로「항일빨치산 참가자들의 회상기」12권을 출간하였고, 이 회상기들은 무장투쟁이라는 엄숙하고 빛난 전통을 구체적 이야기로 살려냄으로써 어떤 다른 해석도 있을 수 없음을 못박는다.




- 천리마와 같이 달리자 ; 천리마 대고조기(1958-1967)


 1958년부터 본격화되는 천리마 운동은 공산주의 건설을 새 목표로 새웠다. 수령이 모든 인민의 어버이라는 혁명적 대가정론은 이미 이 시기에 구체화 되었고, 주체시대로의 길을 연 시기였다. 항일유격대식으로 살고 투쟁해야 한다는 것은 최고의 명령이었고, 이 천리마 운동은 ‘유격대 국가’로 가는 길을 열었다.「우리도 천리마를 타자」는 제목으로 『조선문학』에 실린 한 정론은 천리마 시대의 목표가 짧은 시간에 앞선 나라들을 따라잡아야 하는 것이라고 설명하면서, 그와 같이 천리마 시대의 문학도 짧은 시간 안에 한 계단 높이 올라가야 함을 역설한다. 김일성은 교시, <천리마 시대에 맞는 문학예술을 창조하자>(1960.11.27)에서 문학예술이 천리마의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고 다시 비판, 새 생활을 창조하고 있는 우리 시대의 영웅을 볼 줄 모르는 것이 작가들의 큰 약점이라고 했다. 더불어 김일성은 문예조직의 통합을 지시한다. 김일성의 교시는 천리마 기수들을 그린 소설들에서 실천되고 있었다. 천리마 기수들을 형상화한 수작으로 꼽힌 단편소설들은 김병훈의「해주-하성에서 온 편지」(1960)와「길동무들」(1960), 군정웅의「백일홍」(1961), 진재환의「고기떼는 강으로 나간다」(1963), 리병수의「령북땅」(1964)등이다. 윤시철의「거센 흐름」(1964)은 천리마 기수를 그린 장편소설로, 고층건물이 들어선 평양의 발전상과 노동자들의 윤택한 삶, 열의와 현장의 노동경험을 바탕으로 한 기술적 창안의 이야기다. 그러나 속도를 시적으로 형상화하는 것은 어려웠다. 정천례의「방직공 처녀에게」는 아름다운 방직공 처녀와 방직기의 움직임을 통해 속도의 희열을 차분하게 형상화해낸 드문 경우에 속한다.


 항일무장투쟁의 과정에서 창작, 보급된 항일혁명문예의 발굴은1950년대 말 항일혁명전통의 부활에 수반된 과제로 떠오른다. 1959년에 나온「조선문학통사」는 항일혁명문예를 김일성 부대가 무장투쟁을 벌이며 창작, 보급한 것으로 설명했다. 항일혁명문예를 대표하는 혁명연극「혈해」의 존재가 처음으로 지면에 소개된 것은 1953년 무장투쟁의 전적지를 답사한 송영의 보고서「백두산은 어데서나 보인다」(1956)에서였다.「혈해」는 3막으로 된 비극인데, 아버지가 독립군으로 집을 나가고, 일제 박해 속에서 큰아들 ‘원남’역시 유격대로 떠나면서 어머니와 이별하는 1막에 이어, 부상당한 유격대원을 쫓아온 일본군이 그를 숨긴 곳을 말하지 않으면 어린 아들 ‘을남’을 죽이겠다고 위협, 어머니는 이에 굴하지 않고 을남이는 희생당하는 데서 2막이 끝난다. 3막에서 어머니는 유격대로 들어가 재봉대원이 되고, 유격대는 어머니가 살던 부락을 습격해 반동지주와 악질 군경들을 소탕하고 인민들을 해방시킨다. 이에 안함광은 그의 문학사에서 김일성이「혈해」를 ‘각색’했다는 주장을 한다. 이런 가운데 한 비평가가「혈해」의 각본으로 발굴되었다는「혈해지창」을 소개한다. 윤세평의「혁명연극 <혈해의 노래>에 대하여」(1961)가 그것이다. 윤세평은「혈해의 노래」, 곧「혈해지창」을 항일유격대에 의해 씌어지고 공연된 1930년대 혁명적 문학유산의 하나로 간주했다. 윤세평의 소개가 이루어진 후 안함광은 갑자기 김일성이「피바다」「성황당」「경축대회」등의 혁명연극을 ‘친히’ 창작했다고 주장한다. 김일성이 항일혁명사를 이끌었던 것처럼 항일혁명문예를 이끌어 나갔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각본이 소개된 지 10년이 안 되어「피바다」란 이름으로 영화와 혁명가극이 만들어진다.「혈해」가 「피바다」로 확정된 것이다.「혈해지창」이「피바다」가 되는 과정은 바로 항일혁명문예를 발굴하는 과정이었다.


 김일성은 <혁명적 대작을 더 많이 창작하자>(1963.11.5)에서 항일혁명역사나 조국해방전쟁을 다룬 소설은 신통한 것이 없다고 하면서, 이 주제는 대작(大作)으로 쓰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교시를 내렸다. 무장투쟁사는 이제 대작(大作)의 영웅서사시로 씌어져 가야 했다. 석윤기의「시대의 탄생」(1부,1966)은 대작논의가 진행되며 나온 장편소설로 그 본보기가 되었다. 조국해방전쟁사를 다룬 이 소설은 폭넓은 역사적 무대를 확보하고 여러 인물들의 장성과 전락의 과정을 유기적으로 엮어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주제는 일관되게 관철된다. 조국해방전쟁은 제국주의 침략에 맞서 민족의 정통성과 자주성을 지키려는 전쟁이며, 따라서 항일무장투쟁의 연장이라는 것이다. 박태원의「계명산천은 밝아오느냐」(1965-66)는 갑오농민전쟁을 소설화한다는 구상 아래 씌어진 역사소설이다. 역사적 사실들과 여러 에피소드들을 잇고, 농민으로부터 봉건 지배층에 이르는 인물형상을 풍성하고 생동하는 시정 세태의 장면들을 통해 제시했다. 사건은 동시적으로 전개되어 공간적 병치의 방법이 구사된다. 특히 세태의 파노라마는 이어지기보다 겹쳐지고, 현재형 시제에 길게 미끄러지는 서술과 독백들, 대화문의 오랜 지속은 역사 이야기를 보다 입체화한 것이었다. 이 소설은 이야기의 계기적 완결성에 집착하는 북한소설의 일반적 정형을 벗어난 점에서 찬사를 받는다.


 김일성의 생일 날짜를 따 1967년 4월 15일, <4.15 문학창작단>이 결성됨으로써 항일혁명역사를 대작으로 쓰는 작업은 시작된다. <불멸의 력사>는 이 <4.15 문학창작단>의 산물이었다.


 천세봉의 장편소설「안개흐르는 새 언덕」(1966)을 각색한 것으로, 1967년 1월 김일성이「내가 찾은 길」이란 영화를 보고 내린 교시 <혁명주제 작품에서의 몇 가지 사상미학적 문제>(1967.1.30)는 주체시대의 문학예술이 어떠해야 하는가를 알린다. 김일성의 비판은 혁명의 역사를 ‘왜곡’한데 대한 경고였다. 이 경고는 집필과 검열에 대한 조직적 지도 강화를 요구한 것이었고, 창작이론과 공인된 본보기를 보이는 것이 필요하게 되었다. 이에 북한문학은 새로운 출발점에 선 것이다.




- ‘한 몸’의 시대, 변화의 전기 ; 주체시대(1967~ ) 


 유일지도 체계가 확립되며 시작되는 주체시대에 들어서 문학은 수령을 유일하고 궁극적인 주인공으로 하는 이야기를 되풀이해야 했다. 인민대중과 수령이 ‘한 몸’이라고 강변하는 상황은 전제적인 것이라 아니할 수 없다. 이로써 북한문학의 주인공은 하나가 되었다. 1967년 봄 로동신문에는 항일빨치산들이 보여주었던 ‘혁명적 지조’를 본받자는 글이 게재된다.


 정문향의「그 기발 아래」(1972)를 위시한 숱한 시들은 장군이고 수령이자 어버이인 그의 영도 업적을 기렸다. <불멸의 력사>는 수령의 혁명역사를 다룬 장편소설 총서다. 이 총서의 첫 권은 1972년에 나온「1932」(권정웅)이었다. 총서는 1994년「승리」(김수경)가 출간되기까지 모두 20편에 이르는데, 장편들간에 등장인물이 통일되지 않고 내용이 연결되지 않는 등의 문제가 있지만, 전체적으로 김일성 이야기를 다룬다. 이 작업은 주체시대를 통해 지속적으로 전개되는데, <불멸의 력사>가 씌어지기 시작하면서 <4.15 창작단>에 의해 김일성의 아버지 김형직을 주인공으로 하는 장편소설「력사의 새벽길」(1972)이 나왔고, 김정일의 생모인 김정숙의 투쟁과정을 그린 장편소설「충성의 한길에서」5부작이 출간되기도 했다. 김정일 역시 수령의 혁명위업을 계승하는 형상으로 그려졌다. 총서 <불멸의 력사>는 허구가 아니라 그 자체가 역사서인 것으로 간주되었다. 역사를 대상으로 하는 작가는 사실 자체에 집착하기보다 그것의 ‘사상적 본질’을 드러내는 데 주력해야 했다. 그것이 바로 ‘발굴’의 이데올로기였다. 이 총서는 ‘창조’와 ‘추구’라는 신화의 근본 범주를 벗어나지 않는다. 여기서 김일성은 모든 것을 이룩한 창조자이며 장래 역시 담보하는 역사의 궁극적 주재자다. 이 승리의 신화는 집단적 나르시시즘을 충족시킬 뿐 아니라, 모든 문제가 지도자에 의해 해결되리라는 믿음을 갖게 하는 사회적 환타지를 제공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불후의 고전적 명작’들로 명명된「피바다」,「꽃파는 처녀」,「한 자위단원의 운명」의 연극들은 1970년을 전후하여 영화와 가극 및 소설로 제작되면서 주체문예의 원칙들을 가장 훌륭히 구현한 기념비적 걸작으로 간주된다.


 1970년대 중반을 넘기며 지식인은 그 역할과 사회적 위상이 높아지면서 인물관계의 긍정적 중심으로 진입한다.「평양시간」(최학수,1976)은 전쟁으로 파괴된 평양을 복구하는 이야기로, 김일성이 조립식 건설 방법을 교시해 이른바 ‘평양속도’를 달성케 했다는 역사적 예를 소재로 한 것이다. 변희근의「생명수」(1978)는 치수의 상상력을 펼친 장편소설로 해마다 홍수 피해를 보는 수난의 땅에 웅대한 관개공사를 구상하는 것은 수령이다. 이 소설이 그리는 것은 수령의 구상이 구체화되는 과정이다. 엄단웅의「령마루」(1980)는 지식인의 노동계급화가 아니라 노동계급의 지식인화를 요구한다. 이들 소설은 전문지식이 지도의 수준에서 발휘될 때 그 성과가 빠르고 크게 나타나리라는 생각을 표현하고 있다. 결국 모든 인민은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지식인이 되어야 했다.


 그러나 수령의 역사쓰기에서 등장인물은 수령의 가르침을 실행하는 기능적 형상으로서의 한계를 가졌다. 그래서 김보행의 장편소설「로동가정」,「녀당원」은 수령을 따르는 역사 쓰기의 형식을 취한 것이지만 충성하는 자세나 마음가짐을 성격화하여 어느 정도 인물의 개별성을 살렸다.


 김정일은 사회기풍을 쇄신할 새 지도자로 등장했다. 정치적 후계자로 김정일의 위치가 공식적으로 확인되는 1980년 10월의 6차 당 대회 이후 그에 대한 예찬은 본격화 되었다. 그는 ‘친애하는 지도자’가 된 것이다. 그는 주체사상을 체계화하고 주체문예를 지도한 인물로 부각되었다. 종자론이나 속도전의 개념을 밝혀 문예학 발전의 전기를 마련했다는 것이 김정일의 문학지도 업적으로 칭송되는 사항들이다. 오늘날 그의 저서「영화예술론」(1973)은 문학예술에 관한 김일성의 여러 언급들과 더불어 ‘불후의 고전적 노작’ 가운데 하나로 꼽히며,「주체문학론」(1992)은 주체문학론의 최종적 결산으로 간주되고 있다. 김정일의 지도자적 덕성을 찬양하는 시들은 계속 씌어졌다. 그러나 운율의 평판성은 북한 시 전반에서 나타나 김정일을 그린 시 역시 운율은 매우 단조롭다.


 「아침해」(현승걸, 1988)는 김정일을 주인공으로 한 첫 장편소설이다. 이어 1970년대 초 영화제작을 지도하는 김정일을 그린「예지」(리종렬, 1990)와 전쟁 시기 특별한 천품에 총명한 어린이 김정일의 활약상을 담은「불구름」(박현, 1991)이 나왔다. 이들 소설에서 그는 놀라운 예지와 열정으로 ‘대범하고 통이 크게’ 갖가지 사업을 지도하고 있다.


 1990년대 초부터는 김정일의 통치사를 그린 <불멸의 향도>총서가 씌어지기 시작한다. 장편소설「푸른하늘」(권정웅, 1992),「동해천리」(백남룡,1996),「력사의 대화」(정기종, 1997),「평양은 선언한다」(리종렬, 1997)등이 그것이다. 그는 해외 동포를 끌어안고 연구사업을 이끌며 광산과 공장의 현지 지도를 아끼지 않는다. 여기서 김정일은 모든 일을 주관하는 위대한 인간으로 제시되고 있다.


 1980년 10월 6차 당 대회에선 공산주의적 인간의 전형을 ‘숨은 영웅’으로 규정하면서 ‘숨은 영웅의 모범을 다라 배우기 운동’을 대중적으로 벌일 것이 제기되었다. 숨은 영웅을 그리자는 주장은 여러 매체들에 의해 인민들의 실제 생활이 드러나고 그에 대해 관심을 기울이게 된 상황을 반영하는 것일 수도 있었다.「봄은 아직 멀리에」(신용선, 1988),「청춘의 시작과 끝은 언제」(김용환, 1990)의 주인공들 역시 막 고중을 졸업한 청년 개발자이고 농촌의 청년분조원들이다. 과학자나 간부는 아닌 그들은 주체시대가 양산한 보통 신세대라 할 것이다. 숨은 영웅이 되어야 하는 젊은이들인 셈이다. 이 시기에 이르러 북한문학은 드디어 애정문제를 본격적으로 다루기 시작한다. 이혼이라는 쉽지 않은 주제를 놓고 부부간의 갈등과 애정의 풍속을 그린 백남룡의「벗」(1988)이나 젊은이들의 애정심리를 생동감 있고 대담하게 묘사한「청춘송가」(남대현, 1988)는 그 뚜렷한 예다.


 1980년대 중반을 넘기며 과학기술의 증진은 국가적 과제가 아닐 수 없었다. 과학에 대한 대중적 관심을 높이기 위한 장르로 ‘과학환상소설’이 창작되었다. 이 소설을 대표하는 작품으로「푸른이삭」(황정상, 1988)이다. 줄거리는 ‘바다개발총연구소’의 연구사들이 서해 한 구역의 바다 속에서 항암 성분을 갖는 벼를 재배하는 데 성공한다는 것이다. 정신과 양심의 힘이야말로 과학을 옳은 방향으로 발전시키는 동력이라고 말한다.


 1980년대 말 이후 북한문학에서 일정하게 나타나는 경향은 소재를 넓히고 개성적 형식을 모색하려는 것이다. 소재의 확대는 형식적 변화를 동반했다. 그러나 소재의 확대와 더불어 구체적 생활에 시선이 닿으면서 중심 줄거리보다 곁가지와 세부의 비중이 커지는 양상이 초래되었다. 현희균의 장편「새 땅」(1991)은 그런 보기다. 간척사업을 벌이는 기업소의 지배인과 노동자들이 갖는 난관을 헤치고 ‘새 땅’을 얻는 과정을 그린 이 소설은, 많은 부분을 지배인을 중심으로 한 여러 인물들의 생활을 담아내는 데 할애하고 있다.


 작가들이 나름의 개성과 독창성을 살려야 한다는 것은 1990년대에 들어 부각된 구호다. 이는 북한문학이 단조롭고, 독자들이 외면하고 있다는 진단을 할 수 있게 된 결과다. 새로운 개성적 형식의 소설로 거론되었던 작품은 정창윤의 단편「의리」(조선문학, 1990.4)다. 조국해방전쟁 시기, 한 인민군 지휘관이 수령에 대한 혁명적 의리를 지킨다는 이 소설의 내용은 특별하지 않다. 그러나 이 소설은 현재와 과거를 유기적으로 결합하는 ‘비약과 함축의 구성수법’을 구사하고 있다. 수령과 지휘관간의 지난 만남을 돌이키는 회상의 수법은 구성을 새롭게 했고, 이로써 새로운 효과를 내게 했다는 것이다. 또 다른 새로운 형식적 방법의 하나는 소설의 이야기를 간접화하는 것이다. 중편소설「향토」(김삼복, 1988)는 그 한 예다. 성인이 된 ‘나’가 어린 시절의 경험과 기억들을 돌이키는 방식으로 전개되는 이 소설에서 과거의 사건들은 끊어지고 이어지며 또 어린아이의 제한된 시점을 통해 여과되어 나타나기도 한다. 회상이라는 장치의 거리감과 ‘나’의 주관성에 의해 이야기는 간접화되고 있다.



마무리


 북한문학이 장차 어떻게 변할 것인가를 예측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여태까지 그랬듯이 북한문학은 북한사회와 북한 체제의 성격 변화에 크게 좌우될 것이다. 전정한 변화란 얼마나 내면의 깊이를 확보하느냐에 달린 문제이기 때문이다.


 과연 북학문학의 본질적 변화는 시작된 것일까? 북한문학이 개별적이고 독창적인 눈을 가질 때 언젠가는 개별적이고 독창적인 이야기를 하게 되지 않을까?

<출처: 이용웅 교수의 북한문화산책>
http://nkculture.ac.kr/Body/BBS.asp?TB=free&Mode=V&Num=1650&Page=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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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heavymango
이만열 교수님의 kpi연례보고 발표자료입니다.(바로가기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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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heavymango
한반도평화연구원(다운받기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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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heavymango

유투브에 있는 북한영상입니다. 아마 방송을 편집한듯 싶습니다. 아래화면은 한번에 전체영상을 로딩하기때문에 컴사양이 낮으면 시간이 오래걸립니다. 출처링크를 클릭하시면 사양이 낮더라도 바로 보실 수 있습니다. ^^
출처:(http://www.youtube.com/watch?v=6CMe8sq395A)



Posted by 비회원

독점 공개, 원 다후씨 북한 가다.

(평범한 외국 관광객은 북한 여행에서 무엇을 보고 느낄까요? 우연히 아는 사람이 북한 여행을 간다길래, 독점 기행문을 부탁했는데, 선뜻 보내줘서 블로거뉴스에 올립니다(제 이야기가 아닙니다.저는 아래주소에서 기사를 옮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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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un Da-hu

 

(주체탑 위의 원 다후씨와 가이드, Wun Da-hu 무단전재 금지)

 

기묘하다흔히들 북한에 대해 경험한 사람들은 이런 식으로 표현합니다. 저도 마찬가지 느낌을 받았지만, 조금 더 예의 바르게 말해서 저의 북한행은 인상적이었다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북한에서의 휴가는 이 세상 그 어느 곳에서 보낸 휴가 여행과도 달랐습니다.

우선 방문자는 북한 화폐로 환전하는 것이 허가되지 않았으며, 물론 북한 화폐를 소지하는 것도 금지됩니다. 입국 시 휴대전화는 압수 당하고, 북한 체류 기간 동안 자유롭게 주위를 돌아다닌다거나, 보고 싶은 대로 보거나, 하고 싶은 대로 하는 일도 허가되지 않습니다.  사진을 찍을 때 마다 우선 허락을 받아야 되고, 체류 기간 내내 다른 외국인들과 함께 호텔 안에서 머물러야 합니다.

 

그렇습니다. 북한엔 외국 여행객을 위한 유스호스텔 같은 게 별로 없습니다. 길모퉁이 카페도 없고, 쇼핑몰도, 온천도, 유람선도, 인터넷 카페도 없습니다. 대략 어떤지 아시겠죠?

 

그런데 왜 갔냐고요?  , 제 생각엔, 아마도 이 나라 전체가 주는, 뭐랄까…… 좀 묘하고 상상 불가능한 점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북한은 현재 존재하는 모든 국가 중에 세상과 거의 격리되어 있는 유일한 공산주의 국가이며, 지도자를 숭배하는 거의 유일한 나라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개인적으로 거기에 덧붙여, 미국이 붙여준 악의 축(Axis of Evil)이라는 꼬리표가 너무나 도발적, 혹은 아슬아슬한 매력으로 들렸기 때문입니다.

 

 

           (노동절을 맞아 주민들과 어울리는 관광객, Wun Da-hu 무단전재 금지)

 

그러나, 현실은 생각과 조금 달랐습니다. 가이드는 친절하고 상냥하며, 주민들도 그렇습니다.  눈을 돌리면 어디에나 존재하는 군인들 조차도 우리에게 짧게 손을 흔들며 미소를 보여줍니다.

 

 

 

 

                                  (교통정리중, Wun Da-hu 무단전재 금지)

 

 

뿐만 아니라, 길거리는 너무나 깨끗하고, 공원은 그림같이 아름다우며, 공해도, 교통정체도 없었으며, 광고도 없더군요!(광고 없는 도시참 좋더라구요.). 흥미로운 건축물과 아름다운 시골 풍경에 더해, 호텔도 아주 편안했습니다.

 

 

 

                                 (오리 불고기, Wun Da-hu 무단전재 금지)

거기다가 음식도 엄청나게 대접받았는데, 그 중의 일부는 정말 환상적인 맛이었어요. (굶주리고 있다는 북한 주민을 생각하면) 죄스럽게도 우리 일행의 대부분은 북한에서 몸무게가 늘어서 돌아오고 말았습니다.

 

 

 

 

                                           (개선문(?), Wun Da-hu 무단전재 금지)

 

 

 

문제는 아마도 지루함일 것입니다. 북한에서 반나절 이상을 머물고 나면 모든 것이 똑같아 보이고, 모든 것이 똑같이 들리기 시작합니다. 우리가 듣고 보는 모든 것이 우리의 위대한 지도자 수령 동지’, ‘미 제국주의자’, ‘인민공화국 군인들과 그들의 영웅적인 전투에 관한 것과 연관이 되어 있습니다.

 

                                            (Wun Da-hu 무단전재 금지)

 

우리는 전투중인 병사의 동상과 전몰 장병 묘지, 전쟁박물관 등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물론 아주 거대한 김일성 동상-그 앞에선 모두들 절을 해야 합니다.-과 그의 소박하고 보잘 것 없는 탄생지와  아주 거대한 묘지도 보았습니다.

나중엔 그를 직접 보게 되는데, 그의 머리 쪽에서 한 번, 오른쪽에서 한 번, 발치에서 한 번, 그리고 왼쪽에서 한번씩 총 4번의 절을 올려야 합니다. 또한 넥타이를 착용하고 들어가야 합니다.

 

사실 북한 내에서 그의 웃는 얼굴을 보지 않고 살기는 불가능합니다. 모든 건물은 물론 모든 남녀주민의 가슴에도 김일성 베지가 달려 있으니까요.

 

잠깐 서울에서의 제 경험과 비교해 볼까요?  남한 주민들은 대부분 외국인들에게 한국의 전통 행사나 의상, 음식, 건축물 같은 것을 설명하기 좋아합니다.  아마도 (외국인들은) 많은 경우 술 한 잔(혹은 아~주 많이) 같이 하자는 초대를 받기도 할 것입니다. 그 이후엔 노래방으로 이어지고 말이죠.  아무도 전쟁에 대해서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만일 그들이 정치에 대해서 이야기한다면 그건 대부분 부도덕한 정치인에 대한 불평인 경우일 것입니다.

 

다시 기묘골-북한을 지칭로 돌아 가서 이야기를 계속 하겠습니다. 우리는 주체탑 위에 올라가서 평양 시내를 내려다 보았습니다. 주체탑은 김정일이 그의 아버지를 기리기 위해 건설한 것입니다. 모든 것이 이 두 김씨에 관한 것이죠. 조금 더 긴 일정을 선택한 관광객들은 버스를 타고 시내밖으로 나가 이 부자에 전달된 선물을 보러 갑니다. 국제 친선 관람관(International Friendship Exhibition) 속에는 올브라이트 여사가 기증한 미국 농구 선수 마이클 조던의 사인볼도 있고, 사담 후세인의 은제 코코넛, 미국의 방송사인 CNN의 기념 커피컵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북측에서 본 판문점과 북한 병사, Wun Da-hu 무단전재 금지)

제 생각에 판문점을 가보지 않고는 한국 여행(남한으로건, 북한으로건 간에)을 했다고 말하기 힘들 것 같습니다.  이곳에 가면 남측에서 북측에 서 있는 당신의 기념사진을 찍고 있는 관광객을 기념촬영할 수 있습니다.(서로 기념촬영을 한다는 뜻).  4마일의 무인 경계지대와 높은 콘크리트 장벽으로 남북한이 나눠져 있는 비무장지대와는 달리, 이곳에선 누구라도 쉽게 상대편으로 걸어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우리 중 일부는 만일 진짜 누군가 반대쪽으로 걸어가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궁금해 하기도 했습니다.  

 

사실, 판문점에는 남북한 양쪽에 걸쳐진 작은 건물이 있는데, 누구라도 대치중인 남북한 양쪽에 동시에 발을 딛고 설 수 있습니다. 아래 사진의 왼쪽은 북한 오른쪽은 남한입니다. 보기엔 다를 바가 없는데....

 

                                (남북한 경계에 선 원 다후씨, Wun Da-hu 무단전재 금지)

판문점 관광을 끝낸 후, 우리는 버스를 타고 평양으로 돌아 왔습니다. 2시간 정도 달리는 동안 그 어떤 정체도 겪지 않았습니다.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 경제 체제에도 일면 좋은 점은 있더라는 생각이 드는군요. 남한의 교통 정체에 몇 시간이고 묶여 있다 보면, 아마 혹자는 조금 더 북쪽으로 가서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

 

 

 

 

                               (평양 지하철역, Wun Da-hu 무단전재 금지)

나중에 평양으로 돌아왔을 때 평양 지하철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그냥 보기만했습니다. 평양 지하철의 한 정거장에서 승차하고는 나머지 하나의 정거장에 내렸습니다. 그게 다였습니다.  어떤 목적지까지 가기 위해 탄다는 교통 수단으로서의 의미가 전혀 없었죠. 그냥 지하철을 타기 위해 탔던 것입니다. 물론, 아마도 최소한 내 생애에 경험해 본 가장 웅장한 지하철이었다는 것만은 말해야 하지 싶습니다.

 

그리고 관광객으로서 당연히 여행 기간 동안 쇼핑도 많이 했습니다. 제 생각엔 대부분의 경우 진짜 필요하거나 흥미롭기 때문이라기 보다는 북한 물건이라는 그 진기함 때문에 사지 않았나 싶습니다. 제 말은, 도대체 몇 사람이나 정말 일성 주체사상이나 한국 전쟁의 기원을 다룬 무겁디 무거운 선전물을 애써 읽고 싶어 하겠는가 하는 거죠.

 

 

 

                               (매스게임과 카드섹션, Wun Da-hu 무단전재 금지)

이번 여행에서 우리들 여행자의 마음에 공통적으로 가장 크게 남을 것은 아마도 대규모 매스게임일 것입니다. 그 엄청난 광경은 제 생애에 경험한 최고의 볼거리 중 하나였다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물론 각 장면은 모두 우리의 위대하고 아름다운 조국에 대한 짧은 이야기를 담고 있었지만, 쇼 자체는 세계 어디에 내 놓아도 대적할만한 상대가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 매스게임 하나만으로도 이번 북한행은 가치가 있었다고 봅니다.

 

 

북경에서 비행기를 타고 북한에 들어갔었는데, 출국할 때는 입국 때와는 달리 기차를 이용했습니다.  기묘함은 이때까지도 계속됩니다. , 물론 선진국에서도 끝없이 펼쳐진 농장지대를 볼 수 있긴 하죠. 그러나, 북한에서의 5일간의 여행은 종착지인 중국의 아주 작은 도시인 단동의 차와 사람들, 소음, 활동, 불빛과 움직임조차도 어딘가 모르게 약속의 땅처럼 느껴지게 만드는 기묘한 효과가 있었습니다. 뭐 이 정도면 제법 흥미로운 여행이었다고 할 수 있겠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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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립니다.)
 
원 다후(Wun Da-hu)씨는 비지니스 영어를 가르치는 강사로, 서울 및 아시아 여러 국가에서 체류하며 그 나라의 문화와 음식을 경험하기 좋아하는 30대 중반의 남자입니다.  
 
한국에 있는 동안 관장님이 배려해줘서 태권도 검은띠를 따게 된 것이 아닌지 아직도 의심하고 있지만, 어쨌거나 국기원에서의 심사를 거쳐 유단자가 되었고, 때로 한국 음식과 한국 버디(buddy)들을 그리워하는 평범한 제3국인(한국인도 아니고, 미국인이나, 영국, 러시아, 중국 등 한국전과 관련한 주요국가가 아닌 나라의 국민, 물론 6.25때 남측 참전국이긴 합니다.)입니다.
 
한국에 대한 그의 관심이 그가 가보지 못한 나머지 반쪽인 북한에 대한 관심으로 이끌어서, 올 봄 휴가 동안 북한에 다녀올 예정이라고 이 메일을 보내왔더군요. 그 동안 해외 언론인이 전해준 북한 여행기는 본 이 있지만, 보통의 외국인은 북한 여행에서 무엇을 보고 느낄 것인가 궁금했습니다.
 
그래서, 여행기를 부탁했는데, 거의 여름이 다 되어가는 지난 주....드디어 여행기를 보내주었습니다.
필명을 원 다후(Wun Da-Hu, 아마도 Wonder Who?(누굴까?)는 의미에서 지은 동양풍(?) 이름 같습니다....)라고 써서 보내준 그의 5일간의 북한 여행기...여러분과 나누고자 부족한 제 실력이지만, 번역을 해 보았습니다. 함께 올리는 사진도 원 다후씨가 북한에서 찍은 것으로 이 글에 한해 사용이 허가된 것입니다.
 
 
 
출처: http://blog.daum.net/gniang/12061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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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비회원


한국어 더빙판은 아직 구할 수가 없네요....아쉬운대로 우선 유투브에 있는 영상을 링크합니다.둘다 일부분만 편집한 것 같습니다.
http://www.youtube.com/watch?v=uTNvaZu30UQ 앞부분
http://www.youtube.com/watch?v=tmLJ8j5PIys 뒷부분

Posted by 비회원



Posted by 비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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