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로
(유니프레이어 공동대표, 서울대통일연구소 연구교수)
천안함 사태 이후 전개된 남북한의 대결양상이 겉잡을 수없이 치닫고 있던 상황을 겪으면서 아래와 같은 절망적인 일기를 썼다. 이렇게 절망적인 일기를 쓸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6.2지방선거에서 집권당이 압승을 하게되면 혹시나 당면할지도 모를 비극에 대해 심히 걱정하며 심정을 적었다. 정말 우리 국민들은 지혜롭고 위대하다. 나는 절망했으나, 하나님은 역시 희망을 보여주셨다. 민족을 위해 기도하는 사람들이 이렇게 많은데, 괜히 혼자 낙심했다는 반성도 한다. 낙망했던 때의 마음을 적는다.
아! 가엾은 한반도여!
남한과 북한은 전쟁을 치른지 꽤 오래되었다. 전쟁의 기억도 가물가물해졌고 두 쪽 모두 지난 수십년 동안 강성해졌다. 스스로 강성해졌다고 판단하고 있다. 남북한 사람들은 전쟁을 하면 서로 이긴다고 말한다. 북한사람들은 “전쟁을 하지 말아야 한다. 전쟁을 하면 물론 우리가 이기겠지만”이라고 말한다. 남한사람들도 마찬가지다. “전쟁만은 하지 말아야 한다. 전쟁을 하면 물론 북쪽이 초토화되겠지만”이라고 믿는다. 이러한 믿음과 확신이 있기 때문에 남북한은 구조적으로 전쟁의 가능성이 높다. 최근의 정세는 남한과 북한이 결국 한판 붙고 엄청난 사상자를 발생하면서 끝이 날 것으로 보인다.
이명박 정권이 들어선 이후 남북간의 갈등이 시작되었고, 2009년 1월에는 북한이 남북간 전면대결을 선언했다. 그리고 4월에 인공위성 발사, 5월에 제2차 핵실험을 감행했다. 2010년 1월 15일에는 청와대를 포함한 본거지를 없애기 위해 보복성전을 개시한다고 밝혔다. 1월 27일에는 북한이 설정한 NLL을 넘으면 무자비하게 응징하겠다고 천명했다. 이러한 군사대결의 연장선상에서 3월 26일 천안함 사태가 발생했다.
한국의 군부는 격앙되어 있다. 휴전선에 대북 확성기 방송을 재개하기 위해 철거했던 확성기를 다시 설치하고 있다. 또 민간에서만 하던 대북삐라를 군대가 전면에 나서서 삐라를 뿌리기로 결정했다. 대북심리전을 시작하면 개성공단을 폐쇄하겠다고 북한은 으름장을 놓고, 확성기를 조준사격해 격파하겠다고 한다. 그렇게 되면 남한은 3배로 갚을 준비가 되어 있고, 그 본거지를 완전히 없애버리겠다고 호언한다.
남북한 간에 점점 고조되고 있는 무력충돌과 전쟁에 대한 분위기는 이제 더 이상 말릴 수 없게 되었다. 피를 보기 전에는 끝내지 못하는 한국사람, 조선사람의 기질이 또 나타나는가보다.
유럽에서도 평화는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았다. 평화란 사람들의 고상한 합의에 의해 성취된 것이 아니다. 수백년 동안 피비린내 나는 살육과 전쟁을 통해 얻은 처절한 교훈이다. 장미전쟁, 100년 전쟁 등 수많은 종교전쟁들이 서로를 죽고 죽이는 살육의 악순환을 겪으면서 이제 더 이상 이념이고 종교고 아무 소용이 없고 그저 사람 목숨을 유지하는 것만으로 만족하는 완전 포기 상태로 가서야 평화에 도달하게 되는 것이다.
아직 북한의 조선사람이나 남한의 한국사람이나 모두 패기가 있고 젊다. 전쟁도 근래 들어 한번 밖에 치른 적이 없고 전쟁의 기억도 오래되었다. 남한과 북한에서 전쟁에 대한 얘기를 너무 쉽게 내뱉는 것을 보면서 전쟁이 가까이 오고 있음을 느낀다. 남북에서 약 100만명의 목숨을 앗아갈 것이다. 그런 후에야 휴전을 하게될 것이고, 통일은 물론 불가능하다. 그런 후에도 또 다른 세대가 한 번의 전쟁을 더 치른 다음 그제서야 평화와 타협을 기대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중국은 이러한 상황이 최선은 아니지만, 차선책으로서 반길 것으로 생각된다. 왜냐하면, 호락호락 중국의 말을 잘 듣지 않는 북한의 자존심을 꺾어 놓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왔기 때문이다. 중국은 이번 기회에 북한을 길들이고 초토화된 북한에 친중정권을 세울 수 있는 호기를 잡게 될 것이다. 한국과 미국이 북한에 공중폭격을 할 수 있어도 육군의 진군은 허용하지 않을 것이다. 즉 휴전선 이북으로 한미 연합군은 넘어가지 못한다. 그 정도면 중국으로서는 가장 만족스러운 상황이 된다. 최선이 아니라면 차선책으로 한반도 문제를 풀어갈 것이며, 이것이 오히려 중국으로서는 결과적으로 최선의 방책이 될 것이다.
미국은 현재 아프간 전쟁으로 많은 상처를 입은 상태라서 한반도 전쟁을 원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흔들리는 자국의 경제를 회복한다는 측면에서는, 그리고 골치아픈 김정일 정권의 핵개발 야욕을 꺾어놓을 수 있다는 점에서는 중대한 결심을 할 가능성도 있다. 일본은 더욱더 한반도의 호기를 노릴 것이다. 미국과 일본이 전쟁을 원하지는 않겠지만, 전쟁이 불가피하다면 이를 계기로 경제적 부흥의 전기를 꿈꿔볼 수도 있을 것이다.
예수님이 예루살렘에 입성하면서 성을 보시고 우시면서 “너도 오늘 평화에 관한 일을 알았더라면...”이라고 탄식하던 장면을 기억한다. 아무리 외쳐도 회개하지 않는 이스라엘에 대해 돌하나도 돌위에 남지 않고 멸망할 것을 예언하셨다. 아! 가엾은 한반도여, 한민족이여! 언제까지 이데올로기와 분노에 압도되어 화해와 용서, 사랑의 말씀을 멀리하는가. 정녕 한반도의 운명은 나락으로 떨어지고 말 것인가. 네가 오늘 진정 평화에 관한 일을 알았더라면 좋을뻔하였거니와 이제는 그 시간이 다가오는구나! 아 가엾은 한반도여!
기도제목
1. 6.2지방선거를 통해 평화에 대한 희망을 보여주시니 감사합니다. 그러나 국민들의 분노를 응집한 ‘천안함 응징’은 보이지 않게 진행되고 있습니다. 선한 결말을 주옵소서.
2. 천안함과 6.2지방선거 이후 실용적이며 중용에 입각한 대북정책이 속히 마련되게 하시고 대한민국과 조선을 아우르는 높은 통일비전과 지혜를 주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