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원 입학 후 사역지를 따라 교회를 옮기면서 6년 만에 모교회의 행사에 참석했습니다. 창립30주년을 기념하는 수련회였는데, (그러고 보니 25년이 넘는 시간을 줄곧 한 교회만을 다녔네요..^^ ) 200명 정도 출석하는 모교회에서 강사로 김동호 목사님을 초청했다는 사실에 한 번 놀랐고, 담임목사님께서 내가 북한선교에 비전이 있는 줄 아시고 강사의 숙소안내를 맡기셔서 또 한 번 놀랐습니다.

아뭏든 김동호 목사님은 줄곧 확신에 찬 어투로 열정적으로 말씀을 전하셨습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교회, 하나님을 나의 목적에 이용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인되시는 삶, 교회 분립과정과 보이지 않는 성전, 열매나눔재단과 새터민과 함께하는 공장사역 등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2000년대 초 많은 교회들과 단체들이 새터민 사역에 유행처럼 뛰어들었다가, 문화적,정서적 차이 등으로 인해 상처를 많이 받았습니다. 우리와 같은 말을 한다고 쉽게 사역을 시작했다가 어려움을 겪게 된 것이지요. 남한교인들이나 새터민 모두 서로를 진심으로 이해하려는 노력이 부족했다고 생각합니다.

새터민들에게 단순히 물질을 지원하는 차원을 넘어 실질적인 정착을 위하여 목사님께서는 박스공장을 시작하였습니다. 배급을 기초로 한 북한식 노동에 익숙한 새터민들에게 남한근로자의 생산성을 기대하는 것은 무리였겠지요. 그래서 몇 달을 적자보았지만 직원의 월급을 깎지 않았답니다.  회사가 직원들에게 믿음을 보이자 직원들도 회사에 대한 믿음을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어느날 버스를 놓친 한 새터민이 4만원을 주고 김포에서 파주까지 택시를 타고 출근했다고 합니다. 하루일당이 4만원 정도이니까 일하나마나였을텐데도 책임감을 가지고 일했다는 것입니다. 편견없이 진심으로 대하면 상대방도 그 마음을 안다는 것이지요.

동안교회를 다 짓고 나서 '이제 편하게 지낼 수 있겠구나'하는 마음이 들어 교회를 사임한 후, 높은뜻 숭의교회를 개척하고, 출석 5,000명되는 교회를 분립하는 등 목회자로서 쉽지 않은 결정이었을텐데 하나님이 주인되시는 삶, 교회였기에 가능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개인적으로 주님의 뜻을 온전히 좇는 자들에게도 어려움이 올 수 있고, 그분의 청부론을 목회자에게까지 적용하는 것은 반대하지만 권력을 추구하는 다른 대형교회들의 모습과 비교할 때 더 빛이 나는 모습이더군요.

아참, 강단에서는 그렇게도 열정적인 모습인 목사님께서 평소에는 너무 조용조용 말하셔서 놀랐습니다. 밥 반공기에 사과반 쪽만 드시는 것도 그렇구요.

김동호 목사님의 가난하고 약한 사람들을 위하여 '보이지 않는 성전'을 짓는 노력에 박수를 보냅니다. 세상사람들에게 이기적인 '개독교' 취급받는 현실에서 그리스도의 사랑을 나타내는 귀한 사역이라고 생각합니다. 후배 목회자에게 귀감이 되어 주셔서 감사합니다.(지금와서 생각하니 목사님과 사진이라도 한 장 찍어둘 걸 후회가 되는군요. 앞으로 교회를 시작하고 권력이나 욕심의 유혹에 무너지지 않도록 스스로를 격려하는 도구로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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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다니던 교회 사모님을 통해 우양재단의 새터민 결연프로그램을 알게 되었습니다.

'7개월 간의 동행'

사실 이 프로그램은 북한을 향한 남편의 비전을 이해하고, 또 동역하기 위한 준비로 저의 아내가 먼저 참여하였고, 올해 저도 아내와 함께 7개월 간의 동행을 통해 새터민대학생과 교제를 나누고, 평화강사양성교육에도 참여하고 있습니다.

그동안 책을 통해, 강의를 통해 간접적으로만 보았던 새터민들을 직접 만나 이야기하고 함께 지내보면서 새터민에 대한 편견이나 오해를 극복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무엇보다 그들은 도와야할 특별한 존재로서가 아니라 친구로서, 선배로서 함께 살아갈 동반자로서 인식하게 되었습니다.

제 짝꿍은 북쪽에서 의대를 졸업하고, 군대 때문에 탈북하여 입국한 친구입니다.

지금 같은 학교에 다니고 있어 가끔은 지나가다 만나기도 하는데요...지금 4학년이라 진로때문에 고민이 많습니다. 실제적인 도움을 줄 위치는 아니지만 이렇게 자신의 고민을 나눌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새터민에게는 큰 힘이 되는 것 같습니다.

한 달에 두 번 정도 새터민짝꿍을 만나서 영화도 보고, 야구장에도 가고...자원봉사도 하고...일반인들에게도 큰 부담은 아닐 것 같습니다.

혹시 관심이 있는 분들은 우양재단에 연락해 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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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많은 정보를 원하시는 분들은 아래를 클릭하세요^^
http://www.wooyang.org/business/peace.ph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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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과 관련된 추억들
추억 1. 초등학교시절 크리스마스 즈음이 되면 학교에서 크리스마스 씰을 팔았었다. 크리스마스 씰이란 대한결핵협회에서 결핵퇴치를 위해 만든 것으로 우표랑 모양이 비슷한데, 우표 옆에 붙이기도 하지만...우표의 가치는 없는...마치 기념주화 같은 것이었다.(요즘 학교에서도 파는 지 모르겠다.) 당시 우표수집이 취미였던 아이들은 종류별로 한 묶음(시트)씩 샀으나, 나는 주로 그 돈을 오락과 뽑기에 탕진<?>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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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나라 최초의 크리스마스 씰


추억 2. 대학시절 어찌어찌하다 1년 동안 신촌에서 자취한 적이 있다. 뭔가 우울하거나 기도해야 할 일이 있으면, 자전거를 타고 합정역 근처 양화진에 갔었다. 일단 낮에는 사람들이 거의 없었고(100주년 교회 들어오기 전), 묘지 앞이기에 기도하거나 울어도 주변을 신경쓸 필요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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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홀 가족의 묘비(양화진)


   두꺼운 분량에 비해 술술 잘 읽히는 책이다. 최근 북한선교모델교회 개척을 준비하면서 다시 꺼내 보았는데, 조선에 왔던 선교사들의 삶과 열정, 사역을 읽으면서 많은 도전과 위로, 격려를 받을 수 있었다.
   이 책은 제임스와 로제타 홀의 평양 개척 사역과 셔우드의 해주구세요양소의 결핵퇴치사업 등 홀 가족의 사역을 중심으로 기록되어있다. 하나님께서 주신 소명을 받아 조선으로 오는 과정에서 부터, 때로는 지연되는 사역과 기다림, 가족을 잃는 어려움 속에서도 낙심하지 않고 끝까지 대를 이어 이 땅을 섬겼던 이들의 역사를 담고 있다.
   지금 북한의 현실을 바라보면 도무지 변화될 것 같지 않아 보이는 암담함에 낙심될 때가 많은데, 100년 전 조선을 바라보던 서양 선교사들 역시 그러했을 것이다. 그들이 조선의 환경과 상황만 바라보고, 사역을 포기했더라면 오늘날의 한국교회는 존재하지 못했을 것이다. 물론 한국에 온 선교사들의 부정적인 면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자식을 잃고, 남편을 잃고도 대를 이어 이 땅을 섬기고, 이 땅에 묻히기를 소망해던 그들의 조선을 향한 사랑은 높이 평가해야 할 것이다.
  덧붙여 드문드문 100년 전 우리 나라의 삶의 모습을 볼 수도 있으며, 구한말의 역사를 선교사의 시각이라는 새로운 관점에서 볼 수 있는 사료로서도 가치있는 책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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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에도 교회가 있을까요?


물론입니다. 공식적으로 북한의 조선그리스도교연맹에서는 봉수교회와 칠골교회, 그리고 대략 500개정도의 가정교회가 있다고 합니다. 이를 토대로 추정하자면 봉수교회 500명정도 칠골교회 200명, 가정교회 10명*500=5000명....종합하면 약 6,000명 쯤 됩니다.(북한 공식자료를 보면 1만, 1만 2000천, 1만 4000정도라고 하는데....뭐 확인할 근거자료가 없으니까요...ㅠㅠ)

그런데 이 교회들이 진짜 교회인가에 대해서는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대표적인 보수기독단체들은  봉수, 칠골교회들은 가짜다. 출석교인들은 대남공작원이라고들 이야기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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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골교회 내부-2007년 방문시

사실 이 문제는 현재로서는 확인할 길이 없습니다. 주로 교회를 방문했던 남측사람들의 느낌에 따라 달라지는 것 같습니다. 뭐 주기도문을 제대로 못하는 것 같다. 성경구절을 잘 못 찾는다. 주변 눈치를 본다. 지시를 받는 것 같다. 설교가 너무 정치적이다.....반대로 눈을 감고 찬송가를 외워부르는 사람이 있다. 진실로 기도하는 것같이 보였다...등등

그러나 적어도 이 교회들이 남한에서 방문했을 때만 예배를 드리는 전시용은 아니라는 것은 맞는 것 같습니다. 매주 예배가 열린다는 뜻이지요....그러나 시간은 조금 애매합니다. 방문자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남쪽 사람들에게 맞춰서 시간이 조정되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남한 기준으로 보면 이들이 과연 신앙인들일까? 여기가 교회일까? 충분히 의심의 눈길을 보낼 수 있습니다.

남한의 진보진영에서는 기존의 조선그리스도교연맹과의 관계를 중심으로 통일,평화운동을 지속해 왔습니다. 따라서 지하교회의 존재에 대해서는 대체로 부정적이거나 알 수 없다라는 태도를 취합니다. 아마도 지하교회를 인정하게 되면, 조선그리스도교연맹과의 관계가 불편해 질 수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반대로 보수기독진영에서는 앞서 언급한 대로 조그련은 어용단체로, 노동당의 통일전술이기에 인정할 수 없으며, 고통받고 핍박받는 지하교회를 지원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여기서 지하교회가 과연 존재하는가?라는 질문을 할 수 있는데요....이것도 현재로서는 확인할 길이 없습니다. 우선 우리가 지하교회에 방문하여 직접 확인할 수 없고, 지하교회의 특성상 그 존재가 드러나면 당국의 제재로 존재자체가 위험에 빠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방문자의 증언에 의존할 수 밖에 없습니다.

북한성도의 성경-모퉁이돌선교회

물론 방문자가 악의적으로 없는 것을 있다하거나 그 수를 부풀릴(지원을 더 받기 위하여) 가능성은 존재합니다. 그러나 여러 방문자들의 의견을 종합해 볼 때 북한 내 지하 신앙인들의 존재는 부정할 수 없어 보입니다. 한국전쟁이후 주민분류사업으로 인해 많은 기독인들이 핍박을 받기는 하였지만, 아직 그 세대가 전부 돌아가신 것은 아니고, 가족들 간에 신앙을 지키고 있다는 보고가 있기 때문입니다.  더욱이 1990년대 말 고난의 행군이후 단순히 식량을 구하기 위해 탈북하는 사람들이 늘어났고, 이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단체들의 활동으로 인해 새롭게 복음을 듣고 돌아가는 사람들이 계속 생겨나고 있기에 어떤 형태로든 북한내 신앙인들의 존재는 인정해야 할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봉수, 칠골교회는 가짜다, 또는 지하교회는 없다"와 같은 소모적인 논쟁은 의미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을 실천하는 일에 있어 방식은 다르지만 보수와 진보 모두 필요합니다. 이러한 노력들 모두 북한 복음화와 통일 이후 교회를 준비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남북화해 대화, 인도적지원, 기독교교류 등을 위해 조선그리스도교연맹과의 관계도  필요합니다. 이유야 어찌되었든 그동안 심하게 부정적이었던 북한헌법상 종교,기독교관련 조항의 변화 등의 성과를 가져오기도 하였습니다. 또한  반세기 넘게 핍박받는 중에서도 믿음으로 신앙을 지킨 북한내 신앙인들에 대한 지원노력도 중요합니다. 대부분의 지하교인들이 북한 내에서도 소외계층이고, 도움의 손길이 절실히 필요한 분들이기 때문입니다.  

다만, 교회 내 진보와 보수는 늘 정치적으로 이용될 수 있음을 잊지 말았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자칫 잘못하다가는 그리스도의 사랑보다 정치권력에 휘둘려 그들의 입장을 대변하는 데 앞장설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정치적인 입장이 다르더라도 서로 비판하고, 부정하기 보다는 열린마음으로, 나와 다른 방식으로 하나님의 뜻, 또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나누고 있다고 이해하는 그리스도인들이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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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유엔 안보리에서 핵무기 및 핵물질의 확산 방지와 핵실험 금지를 위한 유엔 회원국의 노력과 핵확산 금지조약(NPT) 강화 등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결의안을 표결에 부쳐 만장일치로 통과시켰네요

여기서 구체적인 국가들은 언급하지 않았지만....북한과 이란이 주요한 타겟이리라 짐작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그간 이란을 옹호하는 견해를 밝혀왔던 러시아가 제재에 동참할 의견을 보였다는 것인데요...이것은 아마도 미국이 최근 동유럽 MD계획을 철회한 데 따른 협조라고 여겨집니다.

앞서 유엔은 지난 6월 북한에 대한 재제안을 결의한 바 있는데요....이에 북한이 강하게 반발하였습니다.

북한 외무성 성명

6월 12일 미국의 사촉하에 유엔안전보장리사회가 끝내 우리의 2차핵시험을 걸고 반공화국

《제재결의》를 채택하였다. 이것은 우리를 무장해제시키고 경제적으로 질식시켜 우리 인민이 선택한 사상과 제도를 허물어보려는 미국주도하의 국제적압박공세의 또 하나의 추악한 산물이다. 미국과 일본은 이《결의》로도 모자라《위조화페》요,《마약밀매》요하는 허구들을 조작해내여 각기 우리 나라에 대한 단독《제재》를 더 가하기 위한 비렬한 음모까지 꾸미고있다. 미국은 저들의 반공화국압살책동에 유엔안전보장리사회를 더욱 깊숙이 끌어들임으로써 조선반도에 일찌기 있어보지 못한 첨예한 대결국면을 조성하였다. 이 대결은 한 주권국가의 합법적인 위성발사권리를 부정해나선 미국과 그에 추종한 유엔안전보장리사회의 불법무도한 강권행위에 의하여 발단되였다. 미국이 조작해낸 유엔안전보장리사회의 4월 14일부《의장성명》에는 아무런 국제법적근거도 없으며 오직 제도를 달리하는 나라에 대한 적의와 거부감, 작은 나라는 큰 나라에 순종해야 한다는 오만과 전횡만이 깔려있다.

 

우리 나라는 작지만 정치사상강국, 군사강국이다. 미국의 강권행위가 용납된다면 우리 공화국은 남들이 다 하는 위성발사 를 다시는 할수 없게 되며 우주리용권리를 영원히 빼앗기게 된다. 우리의 2차핵시험은 이러한 미국의 적대행위에 대처하여 단행된 그 어떤 국제법에도 저촉되지 않는 자위적조치이다. 오늘의 이 대결은 본질에 있어서 평화와 안전에 관한 문제이기전에 우리 공화국의 자주권과 존엄에 관한 문제이며 조미대결이다. 자주와 평등을 떠나서 진정한 평화란 있을수 없다.

누구든 우리의 처지에 놓이게 된다면 핵보유가 결코 우리가 원한것이 아니라 우리에 대한 미국의 적대시정책과 핵위협으로 인한 불가피한 길이였음을 알고도 남을것이다. 이제와서 핵포기란 절대로, 철두철미 있을수 없는 일로 되였으며 우리의 핵무기보유를 누가 인정하는가 마는가 하는것은 우리에게 상관이 없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외무성은 위임에 의하여 유엔안전보장리사회《결의 1874호》를 단호히 규탄배격하며 미국과의 전면대결이 시작된 현 단계에서 민족의 존엄과 나라의 자주권을 지키기 위하여 다음과 같은 대응조치를 취한다는것을 선언한다.

 

첫째, 새로 추출되는 플루토니움전량을 무기화한다. 현재 페연료봉은 총량의 3분의 1이상이 재처리되였다.

둘째, 우라니움농축작업에 착수한다. 자체의 경수로건설이 결정된데 따라 핵연료보장을 위한 우라니움농축 기술개발이 성과적으로 진행되여 시험단계에 들어섰다.

셋째, 미국과 그 추종세력이 봉쇄를 시도하는 경우 전쟁행위로 간주하고 단호히 군사적으로 대응한다.

미국을 비롯한 적대세력들이 제아무리 고립봉쇄하려고 하여도 당당한 핵보유국인 우리 공화국은 끄떡도 하지 않는다.《제재》에는 보복으로,《대결》에는 전면대결로 단호히 맞서나가는것이 우리의 선군사상에 기초한 대응방식이다.

 

주체98(2009)년 6월 13일 평양


미국을 비롯한 국제사회의 대북제재가 지속되자 9월 북한은 자신들의 우라늄 농축이 성공적으로 진행돼 마무리 단계에 들어섰으며 폐연료봉 재처리도 마무리 단계이고 추출한 플루토늄을 무기화하고 있다며 공세를 강화하고 있습니다.

제가 볼 때 북한은 강경한 협박전술과 함께 우라늄 농축과 핵무기라는 카드를 통해 미국과의 직접대화를 통한 ‘통 큰’ 거래를 준비하고 있는 모습입니다. 계속된 강경한 어조 속에서도 한편으로는 대화로 풀 수도 있다는 여지를 남겨 놓고 있기 때문입니다.

오바마 정부는 북한 뿐 아니라 이란이라는 민감한 사안을 동시에 다루어야 하는데....앞으로 미국이 북한과 이란 핵문제를 어떻게 풀 것인지...과연 북한과의 ‘통 큰’ 거래가 이루어질지 지켜볼 일이라 하겠습니다.(개인적으로는 북미 간의 대화를 통한 평화적 해결을 기도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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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관계가 경색되고 대치국면이 나타날 때마다 늘 등장하는 것이 서해에서의 무력충돌 가능성과 북방한계선(NLL)입니다.

몇 달전 서해상에 있는 중국의 불법 꽃게잡이 어선들이 갑자기 철수했다는 보도가 있었습니다. 2002년 연평해전 당시도 유사한 전례가 있었기 때문에 북한의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에 이어 서해에서 국지적인 무력충돌을 우려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것이 북방한계선(NLL)입니다. 사실 육지는 한국전쟁 휴전협정에서 군사분계선이 설정되어 경계가 명확함으로 문제가 없습니다. 그러나  바다의 경계에 관하여는 명확하게 정해놓지 않았습니다.


휴전협정 제2조 제13항 B호를 보면 "후방과 연안 도서 및 해면으로부터 모든 군사역량을 철거한다...상기한 연안도서라는 용어는 휴전협정 발효시에 비록 일방이 점령학 있을지라도 1950년 6월 24일에 상대방이 통제하고 있던 도서를 말한ㄷ. 단 황해도와 경기도의 도계선 북쪽과 서쪽에 있는 도서 중에서 백령도, 대청도, 소청도, 연평도 및 우도의 도서들을 유엔군 총사령관의 군사통제하에 남겨두는 것을 제외한 다른 모든 도서들은 조선인민군 최고사령관과 중국인민군 사령관의 군사통제하에 둔다. 한국 서해안에 있어서 상기 경계선 이남에 있는 모든 도서들은 유엔군 총사령관의 군사통제하에 남겨둔다"고 규정합니다.

북측은 황해도와 경기도의 도계선 북쪽과 서쪽의 서해 5도를 포괄하는 수역은 북한통제권이라고 주장합니다. (지도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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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말씀드렸듯이 서해 5도는 휴전협정상 남측에 포함된다고 명시되었기 때문에 북측은 위 사진과 같이 길다란 통로를 만들어 준것이고, 우리의 NLL과 북측의 경계선이 겹치는 곳은 항상 무력충돌의 위험이 존재하는 것입니다.

제2차 정상회담 시 이 지역을 서해안 평화협력 특별지대와 공동어로구역으로 설정하자는 합의가 있었으나, 10.4선언이 유야무야되는 현 상황에서는 남북한관계가 경색될 때마다 앞으로도 이 문제는 반복해서 등장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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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측이 NLL이남 해역을 몇 십년동안 실효적 지배를 하고 있지만 여전히 분쟁의 소지가 있는 것이지요...마치 독도문제처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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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남북관계자들이 개성공단과 관련하여 만났지만 아무런 성과없이 22분만에 끝나고 말았습니다. 북한은 '서울 50km'발언 등 연일 강경한 어조로 남측을 압박하고 있습니다다. 과연 언제부터 남북관계가 이렇게 뒤틀리게 된 것일까요?

예전에 읽은 신앙서적에서 '하나님과의 관계가 무너졌다고 느끼는 순간, 바로 가장 마지막 하나님께 나아갔던 곳으로 돌아가라' 문구가 있습니다. 대결지향적인 현 남북관계는 분명 통일을 향한 길에서 벗어난 것처럼 보입니다.

  그렇다면 2007년 남북정상회담으로 거슬러 올라가 볼까요?자료를 정리하다가 남북정상회담 준비기획단에서 만든 '2007년 정상회담 해설'이라는 문건을 다시 살펴 보았습니다. 왠지 이 중요한 문건이 사문화되는 것 같아 아쉽습니다.



이후 10월 11일 미국은 북한을 테러지원국에서 해제하게 되고, 북한핵폐기와 6자회담의 재개 등 장미빛 평화를 이루는 듯 보였습니다다. 조심스럽지만 금강산 관광재개와 개성공단이 활성화되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라는 예측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2008년 2월 26일 뉴욕필하모닉 오케스트라가 평양에서 공연을 갖게 될 것이라는 발표가 있었습니다. 이 무렵 라이스 국무장관의 평양방문과 북미관계정상화에 대한 전망이 있었지요.  

그러나 2007년 12월 남측에서는 보수적인 이명박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이 되면서 지난 10년 간 주요 성과인 남북관계에 대해 전면적인 재검토가 불가피하게 되었습니다. 당시 통일부를 없애려고 까지 하였으니...이후 남북관계는 더 설명이 필요없을 것입니다.(당시 북한은 이명박 대통령에 대한 비난이나 언급을 자제하고 있었는데, 이 당시만 해도 남북관계 개선을 통해 식량난을 해결하려는 분위기가 있었습니다.)
출처: 연합뉴스

일설에는 이명박 대통령 취임식에도 김영남 위원장이 방문하려고 하였으나, 실무진에서 검토 후 모두 무산되었다고 합니다. 아무래도 보수층의 지지로 당선된 이명박 대통령으로서는 당선 후 얼마되지 않아 갑작스런 입장변화가 부담이었겠지요.(실용주의자인 이명박 대통령의 결단이 정말 아쉬운 순간이었습니다.) 그러나 이 때부터 특히 2008년 3월 말 '비핵개방3000'이라는 북한의 자존심을 뭉개는 발표를 하게 되지요(이 때 조금 주의를 기울여 '상생과 공영'이라고 발표했으면 어땠을까요? 또한 아쉬운 대목입니다.) 개성공단 문제 역시 실용주의적 입장에서 북의 입장변화를 요구한 것에 북한이 반응하지 않자 북한 노동자용 기숙사 거부, 2단계 추가 확장 중단, 개성공단을 대체할 나들섬 프로젝트 추진 등 북한을 압박하는 조치 역시 문제가 있다고 여겨집니다.

2008년 2월 평양에서 미국의 국기과 국가가 연주되는 모습을 보면서, 영원한 우방이나 적국은 없다는 말이 새삼 다가왔습니다. 미국국가연주가 끝나고 참석한 북한사람들이 기립박수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습니다. 과연 그들은 미국국가를 들으면서, 또 박수를 치면서 무슨 생각이 들었을까요?(나중에 통일되면 꼭 물어보고 싶다.)
그러면서 앞으로의 남북관계도 어떻게 바뀔 지 모르니 나도 세월을 아껴 미래를 철저하게 준비해야겠다는 다짐을 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러나 예상되었던 라이스 국무장관의 방북은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북미관계개선이 한반도 평화체제로 가는 핵심이라고 생각하는데 아쉬운 대목입니다. 테러지원국해제->북미관계정상화->정전협정을 종전협정 또는 평화협정으로 변경->남북평화체제 이런 프로세스를 예상했었거든요.
   북미관계가 뒤틀린 데는 개인적으로는 아마도 당시 핵기술을 시리아에 제공했는지에 대한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문제에 대해서는 2007년 9월
12일 미국의 '뉴욕타임스' 신문이 북한과 시리아 간의 핵 협력 의혹을 처음으로 보도했습니다. 미국 정부는 북한이 시리아의 핵 개발을 지원했으며, 이를 파악한 이스라엘이 전폭기를 동원해 문제의 핵 시설을 파괴했다고 보고 있었는데, 북한이 미국이 납득할 만한 충분한 설명을 하지 못한 듯 보입니다.    

  아뭏든 평양공연은 끝이 났고, 김정일 위원장은 공연 다음날 아침 갑자기 평양주재 중국대사관을 방문하여 사진 한장을 찍습니다. 남북관계가 틀어지고 북미관계가 표류할 조짐을 보이자 중국과의 관계개선 사인을 보낸 것이지요. 2008년 6월 중국의 5세대 지도자 시진핑 국가 부주석이 첫 공식방문으로 평양에 옵니다. 그리고는 대규모 원조를 약속합니다. 중국으로서도 미북관계개선을 그냥 지켜만 보고 있을 수 없었고, 북한에 대한 영향력을 잃고 싶지 않았을 테니까요.
출처: 한겨레
이후 금강산 관광객피살사건에서 개성공단남측관계자 철수, 최근 미사일 발사까지 쭈---욱  어려운 시간을 보내고 있지요.(더 길어질 것 같아 이쯤에서 급하게 마무리합니다. 간만에 쉬는 시간인데...너무 에너지를 쏟은 듯 싶네요....급피곤...) 개인적으로 남북관계는 이명박 정부의 입장변화나 북미간의 획기적인 관계개선이 없는 한 남북관계는 한동안 냉각기를 갖게 될 것 같습니다. ㅜㅜ

지난 주 무한도전이라는 프로그램에서 이휘재의 인생극장'을 패러디한 방송을 재미있게 보았습니다. 만약 과거 몇 번의 중요한 결정순간에서 지금과는 다른 선택을 했다면(물론 가정이지요...ㅠㅠ) 현재 남북관계와 동북아정세는 어떻게 달라져 있을까요?
Posted by heavyman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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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9.04.22 22:27

    이번 개성협상과 관련한 서울대 통일연구소 김병로 교수님의 글을 링크합니다. 아래 주소를 누르세요^^

    http://tongil.snu.ac.kr/tboard/view.php?id=05_07&page=1&sn1=&divpage=1&sn=off&ss=on&sc=on&sp=on&select_arrange=headnum&desc=asc&no=97

  2. 2013.04.23 08:21

    마지막 집에 들어가는 차이고 널 깊게 사랑하는 사람은 이두가지 일 절대로 놓치지말세요

이만열 교수님의 글입니다.

Posted by heavyman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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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독일을 방문하는 목적은 그동안 책으로만 배웠던 동서독 통일과 통일 후 독일의 변화상을 직접 확인하는 것이었습니다. 특히 동독 주민들과 동독지역의 변화 모습을 보고 싶었습니다. 일단 베를린에서는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라는 옛말대로 시내에서 분단의 흔적을 찾기는 쉽지 않았습니다. 베를린의 옛 동독지역 중심가인 포츠담 광장에는 우중충한 회색건물들이 자취를 감추고, 말끔한 첨단 고층건물들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었습니다.(포츠다머 플랏츠라는 대규모 재개발 사업이 있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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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를린 여행 안내 센터에 문의하여 베를린 장벽이 남아있는 찰리포인트라는 곳을 찾았는데, 한참을 헤메고 나서야 겨우 도착할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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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리 포인트는 미군의 검문소가 있던 곳으로 지금은 도로 가운데 검문소가 남아 있으며, 그 주변에 베를린 장벽 박물관, 그리고 약 1km정도 베를린 장벽을 보존하였습니다. 직접 분단의 현장을 가서 보니 우리도 하루빨리 통일을 이루어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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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 직후인 통일 이후 1년 만에 동독지역의 생산성은 통일 이전의 3분의1 수준으로 곤두박질했고, 동독 근로자의 월 평균수입은 1370마르크로 서독 근로자의 55%에 불과했지만, 올 들어 88%(2470마르크)까지 접근했다고 합니다. 옛 동독지역 많은 사람들이 구조조정 등으로 실직하거나, 보다 많은 기회를 찾고자 베를린 같은 대도시나 서독지역으로 이주하였다고 합니다. 실제로...드레스덴이라는 구 동독지역을 방문했는데, 관광객을 빼면 젊은이들을 찾아보기 힘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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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질 무렵 아내와 선착장 옆 까페에서 아이스크림 먹었던 풍경이 기억나네요...여긴 러시아의 상트페테르부르그와 비슷한 느낌이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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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떠난 독일애(플로라구....6주동안 연구소에 있었어요)가 그러더군요....음식에 비해 음료값이 엄청 비싼데, 꼭 시켜야 한다고...안그럼...정말 매너없는 사람인 것처럼 위아래로 쳐다본다고 하네요....ㅠㅠ 가난한 여행자인 우리는 한국에서 처럼 둘이 하나 시켰는데....ㅠㅠ 웬지 더 필요한 게 없냐는 질문이....그런거였나봐요...헉


통일에 대한 독일인들의 설문조사에서 지속적인 노력을 통해 동서독 주민의 내적 통합이 꾸준히 이뤄져 지금은 서독 주민 81%, 동독 주민 68%가 자신을 서독인이나 동독인이 아닌 `독일인'으로 인식하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고 합니다.(한겨레 기사내용)


제가 봐도 이제는 누가 동독출신인지 겉으로 봐서는 전혀 분간할 수 없었습니다. 적어도 외향으로는 통일이 이루어진 것처럼 보였습니다.(내면적인 갈등은 분명히 남아있을 것이라고 여겨졌으나, 구체적으로는 사생활침해가 될 까 싶어 잘 물어볼 수 없었습니다.)

Posted by heavyman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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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11월 다니는 학교에서 통일부의 협조를 받아 도라산역과 판문점을 방문하였다.

신촌에서 도라산까지는 채 한시간도 걸리지 않았다. 심지어 최근 이사한 우리 인천집보다 더 가까웠다...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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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말 평양에 다녀온 적이 있었다. 직항으로 순안공항까지 50분 만에 갔는데....205km이면 서울에서 대전과 대구 중간 쯤 될 듯 하니...기차로 만약 ktx가 연결된다면 역시 1시간이면 가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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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록 지금은 중단되었지만 얼마전까지 남북을 오가던 한 칸짜리 화물열차....오후 1시반-2시쯤 하루 한번 운행을 마치고 정비중인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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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성공단에서 열차로 화물을 운반하려면 개성공단-판문역-도라산역 등으로 여러번 하역작업을 해야 하기 때문에 현재로선 차량에 비해 경쟁력이 없다. 따라서 상징적으로 한 칸만 운행한다고 했다. 그러나 만약 경의선이 중국으로 러시아로 유럽으로 연결된다면.....배에 비해 월등한 경쟁력을 지니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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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쯤 우리 외할아버지네가 사셨던 황해도에 가볼 수 있을까???

'정지'라는 간판이 못내 마음을 아프게 한다.


하루속히 남북이 경색된 대결구도를 극복하고 서로 화해와 협력함으로 상생의 길을 이루어 갔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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