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4. 22. 14:32
오늘 남북관계자들이 개성공단과 관련하여 만났지만 아무런 성과없이 22분만에 끝나고 말았습니다. 북한은 '서울 50km'발언 등 연일 강경한 어조로 남측을 압박하고 있습니다다. 과연 언제부터 남북관계가 이렇게 뒤틀리게 된 것일까요?
예전에 읽은 신앙서적에서 '하나님과의 관계가 무너졌다고 느끼는 순간, 바로 가장 마지막 하나님께 나아갔던 곳으로 돌아가라' 문구가 있습니다. 대결지향적인 현 남북관계는 분명 통일을 향한 길에서 벗어난 것처럼 보입니다.
그렇다면 2007년 남북정상회담으로 거슬러 올라가 볼까요?자료를 정리하다가 남북정상회담 준비기획단에서 만든 '2007년 정상회담 해설'이라는 문건을 다시 살펴 보았습니다. 왠지 이 중요한 문건이 사문화되는 것 같아 아쉽습니다.
이후 10월 11일 미국은 북한을 테러지원국에서 해제하게 되고, 북한핵폐기와 6자회담의 재개 등 장미빛 평화를 이루는 듯 보였습니다다. 조심스럽지만 금강산 관광재개와 개성공단이 활성화되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라는 예측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2008년 2월 26일 뉴욕필하모닉 오케스트라가 평양에서 공연을 갖게 될 것이라는 발표가 있었습니다. 이 무렵 라이스 국무장관의 평양방문과 북미관계정상화에 대한 전망이 있었지요.
그러나 2007년 12월 남측에서는 보수적인 이명박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이 되면서 지난 10년 간 주요 성과인 남북관계에 대해 전면적인 재검토가 불가피하게 되었습니다. 당시 통일부를 없애려고 까지 하였으니...이후 남북관계는 더 설명이 필요없을 것입니다.(당시 북한은 이명박 대통령에 대한 비난이나 언급을 자제하고 있었는데, 이 당시만 해도 남북관계 개선을 통해 식량난을 해결하려는 분위기가 있었습니다.)
출처: 연합뉴스
일설에는 이명박 대통령 취임식에도 김영남 위원장이 방문하려고 하였으나, 실무진에서 검토 후 모두 무산되었다고 합니다. 아무래도 보수층의 지지로 당선된 이명박 대통령으로서는 당선 후 얼마되지 않아 갑작스런 입장변화가 부담이었겠지요.(실용주의자인 이명박 대통령의 결단이 정말 아쉬운 순간이었습니다.) 그러나 이 때부터 특히 2008년 3월 말 '비핵개방3000'이라는 북한의 자존심을 뭉개는 발표를 하게 되지요(이 때 조금 주의를 기울여 '상생과 공영'이라고 발표했으면 어땠을까요? 또한 아쉬운 대목입니다.) 개성공단 문제 역시 실용주의적 입장에서 북의 입장변화를 요구한 것에 북한이 반응하지 않자 북한 노동자용 기숙사 거부, 2단계 추가 확장 중단, 개성공단을 대체할 나들섬 프로젝트 추진 등 북한을 압박하는 조치 역시 문제가 있다고 여겨집니다.
2008년 2월 평양에서 미국의 국기과 국가가 연주되는 모습을 보면서, 영원한 우방이나 적국은 없다는 말이 새삼 다가왔습니다. 미국국가연주가 끝나고 참석한 북한사람들이 기립박수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습니다. 과연 그들은 미국국가를 들으면서, 또 박수를 치면서 무슨 생각이 들었을까요?(나중에 통일되면 꼭 물어보고 싶다.)
그러면서 앞으로의 남북관계도 어떻게 바뀔 지 모르니 나도 세월을 아껴 미래를 철저하게 준비해야겠다는 다짐을 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러나 예상되었던 라이스 국무장관의 방북은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북미관계개선이 한반도 평화체제로 가는 핵심이라고 생각하는데 아쉬운 대목입니다. 테러지원국해제->북미관계정상화->정전협정을 종전협정 또는 평화협정으로 변경->남북평화체제 이런 프로세스를 예상했었거든요.
북미관계가 뒤틀린 데는 개인적으로는 아마도 당시 핵기술을 시리아에 제공했는지에 대한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문제에 대해서는 2007년 9월 12일 미국의 '뉴욕타임스' 신문이 북한과 시리아 간의 핵 협력 의혹을 처음으로 보도했습니다. 미국 정부는 북한이 시리아의 핵 개발을 지원했으며, 이를 파악한 이스라엘이 전폭기를 동원해 문제의 핵 시설을 파괴했다고 보고 있었는데, 북한이 미국이 납득할 만한 충분한 설명을 하지 못한 듯 보입니다.
아뭏든 평양공연은 끝이 났고, 김정일 위원장은 공연 다음날 아침 갑자기 평양주재 중국대사관을 방문하여 사진 한장을 찍습니다. 남북관계가 틀어지고 북미관계가 표류할 조짐을 보이자 중국과의 관계개선 사인을 보낸 것이지요. 2008년 6월 중국의 5세대 지도자 시진핑 국가 부주석이 첫 공식방문으로 평양에 옵니다. 그리고는 대규모 원조를 약속합니다. 중국으로서도 미북관계개선을 그냥 지켜만 보고 있을 수 없었고, 북한에 대한 영향력을 잃고 싶지 않았을 테니까요.
예전에 읽은 신앙서적에서 '하나님과의 관계가 무너졌다고 느끼는 순간, 바로 가장 마지막 하나님께 나아갔던 곳으로 돌아가라' 문구가 있습니다. 대결지향적인 현 남북관계는 분명 통일을 향한 길에서 벗어난 것처럼 보입니다.
그렇다면 2007년 남북정상회담으로 거슬러 올라가 볼까요?자료를 정리하다가 남북정상회담 준비기획단에서 만든 '2007년 정상회담 해설'이라는 문건을 다시 살펴 보았습니다. 왠지 이 중요한 문건이 사문화되는 것 같아 아쉽습니다.
이후 10월 11일 미국은 북한을 테러지원국에서 해제하게 되고, 북한핵폐기와 6자회담의 재개 등 장미빛 평화를 이루는 듯 보였습니다다. 조심스럽지만 금강산 관광재개와 개성공단이 활성화되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라는 예측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2008년 2월 26일 뉴욕필하모닉 오케스트라가 평양에서 공연을 갖게 될 것이라는 발표가 있었습니다. 이 무렵 라이스 국무장관의 평양방문과 북미관계정상화에 대한 전망이 있었지요.
그러나 2007년 12월 남측에서는 보수적인 이명박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이 되면서 지난 10년 간 주요 성과인 남북관계에 대해 전면적인 재검토가 불가피하게 되었습니다. 당시 통일부를 없애려고 까지 하였으니...이후 남북관계는 더 설명이 필요없을 것입니다.(당시 북한은 이명박 대통령에 대한 비난이나 언급을 자제하고 있었는데, 이 당시만 해도 남북관계 개선을 통해 식량난을 해결하려는 분위기가 있었습니다.)
출처: 연합뉴스
일설에는 이명박 대통령 취임식에도 김영남 위원장이 방문하려고 하였으나, 실무진에서 검토 후 모두 무산되었다고 합니다. 아무래도 보수층의 지지로 당선된 이명박 대통령으로서는 당선 후 얼마되지 않아 갑작스런 입장변화가 부담이었겠지요.(실용주의자인 이명박 대통령의 결단이 정말 아쉬운 순간이었습니다.) 그러나 이 때부터 특히 2008년 3월 말 '비핵개방3000'이라는 북한의 자존심을 뭉개는 발표를 하게 되지요(이 때 조금 주의를 기울여 '상생과 공영'이라고 발표했으면 어땠을까요? 또한 아쉬운 대목입니다.) 개성공단 문제 역시 실용주의적 입장에서 북의 입장변화를 요구한 것에 북한이 반응하지 않자 북한 노동자용 기숙사 거부, 2단계 추가 확장 중단, 개성공단을 대체할 나들섬 프로젝트 추진 등 북한을 압박하는 조치 역시 문제가 있다고 여겨집니다.
2008년 2월 평양에서 미국의 국기과 국가가 연주되는 모습을 보면서, 영원한 우방이나 적국은 없다는 말이 새삼 다가왔습니다. 미국국가연주가 끝나고 참석한 북한사람들이 기립박수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습니다. 과연 그들은 미국국가를 들으면서, 또 박수를 치면서 무슨 생각이 들었을까요?(나중에 통일되면 꼭 물어보고 싶다.)
그러면서 앞으로의 남북관계도 어떻게 바뀔 지 모르니 나도 세월을 아껴 미래를 철저하게 준비해야겠다는 다짐을 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러나 예상되었던 라이스 국무장관의 방북은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북미관계개선이 한반도 평화체제로 가는 핵심이라고 생각하는데 아쉬운 대목입니다. 테러지원국해제->북미관계정상화->정전협정을 종전협정 또는 평화협정으로 변경->남북평화체제 이런 프로세스를 예상했었거든요.
북미관계가 뒤틀린 데는 개인적으로는 아마도 당시 핵기술을 시리아에 제공했는지에 대한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문제에 대해서는 2007년 9월 12일 미국의 '뉴욕타임스' 신문이 북한과 시리아 간의 핵 협력 의혹을 처음으로 보도했습니다. 미국 정부는 북한이 시리아의 핵 개발을 지원했으며, 이를 파악한 이스라엘이 전폭기를 동원해 문제의 핵 시설을 파괴했다고 보고 있었는데, 북한이 미국이 납득할 만한 충분한 설명을 하지 못한 듯 보입니다.
아뭏든 평양공연은 끝이 났고, 김정일 위원장은 공연 다음날 아침 갑자기 평양주재 중국대사관을 방문하여 사진 한장을 찍습니다. 남북관계가 틀어지고 북미관계가 표류할 조짐을 보이자 중국과의 관계개선 사인을 보낸 것이지요. 2008년 6월 중국의 5세대 지도자 시진핑 국가 부주석이 첫 공식방문으로 평양에 옵니다. 그리고는 대규모 원조를 약속합니다. 중국으로서도 미북관계개선을 그냥 지켜만 보고 있을 수 없었고, 북한에 대한 영향력을 잃고 싶지 않았을 테니까요.
출처: 한겨레
이후 금강산 관광객피살사건에서 개성공단남측관계자 철수, 최근 미사일 발사까지 쭈---욱 어려운 시간을 보내고 있지요.(더 길어질 것 같아 이쯤에서 급하게 마무리합니다. 간만에 쉬는 시간인데...너무 에너지를 쏟은 듯 싶네요....급피곤...) 개인적으로 남북관계는 이명박 정부의 입장변화나 북미간의 획기적인 관계개선이 없는 한 남북관계는 한동안 냉각기를 갖게 될 것 같습니다. ㅜㅜ
지난 주 무한도전이라는 프로그램에서 이휘재의 인생극장'을 패러디한 방송을 재미있게 보았습니다. 만약 과거 몇 번의 중요한 결정순간에서 지금과는 다른 선택을 했다면(물론 가정이지요...ㅠㅠ) 현재 남북관계와 동북아정세는 어떻게 달라져 있을까요?
지난 주 무한도전이라는 프로그램에서 이휘재의 인생극장'을 패러디한 방송을 재미있게 보았습니다. 만약 과거 몇 번의 중요한 결정순간에서 지금과는 다른 선택을 했다면(물론 가정이지요...ㅠㅠ) 현재 남북관계와 동북아정세는 어떻게 달라져 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