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우여곡절 끝에 7차 개성공단 회담이 진행중입니다. 지난 글에서 말씀드린바와 같이 우리 정부는 북측의 사과와 재발방지를 위한 장치(문건에 꼭 '북'의 책임을 명확히 하기를 주장)를 마련하기 전까지는 공단재개는 어렵다는 입장을 굽히지 않았습니다. '중대한 결정'을 위한 첫단계인 개성공단 입주기업에게 보험금 지급을 결정했지요.(기업이 보험금을 수령하면 공단의 소유권이 정부로 이관됨. 따라서 공단폐쇄 결정이 가능해짐)
우리측 입장이 강경하여 공단폐쇄까지 갈 수도 있겠다고 판단한 북측은 입장을 선회하여 7차 회담에 나오기로 결정합니다. 제 생각은 북측이 공단을 하루속히 재가동하기를 원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다행스러운 것은 줄곧 공단가동중단의 책임을 '북'이라고 명시하기를 요구했던 정부가 북측의 책임이 분명하다는 어조만 있으면 된다는 보다 유연한 모습을 보였다는 것입니다.
회담을 지켜보면서 1995년 남측이 북측에 쌀을 지원했던 일이 떠올랐습니다. 국제사회에 대한 북측의 수해지원요청에 남측이 응답하여 1995년 6월 25일 쌀 2000톤이 부산항에서 청진항으로 가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6월 27일 청진항 앞에서 군인들과 도선사들이 함께와 뱃머리에 강제로 인공기를 걸게 하는 일이 발생했습니다.(국제관행은 배 앞머리에 도착지 국기를, 뒤에는 배의 국적기를 다는 것이나 당시엔 아무 국기도 걸지 않기로 남북이 합의했음)
이 사실이 언론에 보도되면서 "퍼주고 뺨맞았다"는 등 여론이 급격히 악화되었고, 결국 정부는 쌀 수송 전면중단을 선언하기에 이르렀습니다. 그리곤 이미 29일 마산항을 떠나 북한영해까지 진입했던 '돌진호'를 우여곡절끝에 회항시킵니다. 일련의 과정을 통해 북측은 사과와 재발방지 약속이 없으면 쌀지원을 하지 않겠다는 우리 정부의 입장이 확고하다는 것을 깨닫고, 7월 10일 정금철 당시 협상대표 명의로 국기를 서로 달지 않기로 한 합의가 청진부대에 잘 전달되지 못해서 일어난 일이라고 사과<?>합니다. 그리고 쌀지원이 재개되어 그 해 10월까지 총 15만톤을 다시 지원하게 됩니다.
95년의 경험을 비추어 개성공단 회담을 전망하면......1. 북측이 체면을 지킬 수 있는 핑계거리가 필요해 보입니다. 2. 북측이 개성공단을 95년의 쌀 15만톤만큼 절박하게 생각하는가? 여부입니다.
지금 2번에 대해서는 북측이 계속 그렇다는 사인을 보내고 있습니다.(북측은 줄곧 개성공단 즉시 재가동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문제는 1번인데......북측은 줄곧 개성공단중단이 남측 책임(정치적 문제들을 들먹이면서)이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이에 대해 우리정부는 '북'의 책임을 명시하기를 요구하고 있기에 회담이 어려울 것이라고 이전글에서 전망한 것입니다.
결국 회담의 성공여부는 남측이 얼마만큼 유연한 태도를 보이면서 어느정도 선에서 북측의 사과를 받아들일 것인지에 달려 있습니다. 일단 북측이 개성공단에 대한 미련이 많이 있는 것으로 보이는 만큼 공단폐쇄와 같은 극단적인 일은 발생하지 않을 것으로 예상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