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4. 10. 12:00
2008년 2학기 북한문학, 특히 소설에 대해 공부할 기회가 있었다. 북한 소설을 직접 읽어볼 수 있는 특별한 기회였다. 물론 소설 '살아계시다'와 같이 북한 문학이 주체이후 김일성 김정일 부자의 신격화와 우상화의 도구가 된 것은 사실이나.....나름의 문학적 재미를 주는 것들도 간혹 볼 수 있다. 개인적으로는 한웅빈의 '차창에 비낀 얼굴들'이 살랑살랑 사람을 기대하게 하면서...은근히 재미있었다.(언제 시간되면 소설리뷰를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서론 - 북한문학의 발단

 북한문학이란 북한이라는 정치, 사회 체제 아래서 씌어지고 읽혀 온 문학이다. 김일성에게 민족의 ‘영도자’라는 호칭이 붙기 시작한 시기는 1946년 5,6월경이다. 한설야의 단편소설「혈로」(1946)에서부터, 1972년 첫 권이 나온 이래 오늘날까지 씌어지고 있는 <불멸의 력사>총서로 이어지는, 김일성을 영도자로 하는 역사 쓰기는 북한문학의 핵심 과제였다. 혁명역사의 단편인 일화는 역사 꾸미기의 근거를 제시하고 방향을 가리키는 것이므로 북한문학의 발단으로 작용했다고 본다.




- 새 제도의 성립 ; 민주 건설기 (1945~1950)


 해방과 더불어 이북의 모든 사람들에게 새로운 방향으로 변화가 시작되었음을 느끼게 한 사건은 토지개혁이었다. 김우철은 서정시「농촌위원회의 밤」(1946)에서 새 제도가 가능하게 한 새 삶을 과거의 삶과 대비했다. “농사꾼끼리 한자리에 모여/ 살아나갈 앞일을 의논해 본 적이/ 어느 한 당대 꿈엔들 있었던가.” 새 제도가 새 삶을 살게 함으로써 새 인간이 되는 ‘성장’의 이야기는 새 역사 쓰기의 형식으로 자리 잡는다. 이기영의 단편소설「개벽」(1946)은 낙후한 농민도 변화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토지개혁이라는 기적은 예상하지 못한 것이었고, 그것은 ‘천지개벽’을 뜻했다. 성장은 결국 사상의 문제였다. 이동규의 단편소설「그의 승리」(1946)는 사상이 역사 따라잡기를 요구하고, 새 시대가 요구한 성장의 방향이 지정되어 있었음을 보여준다. 새 역사의 건설은 김일성이 일제와 맞서 영웅적으로 싸우고 비범한 통찰과 신묘한 전략으로 승리를 거두어 온 결과이자, 그 과정에서 구상된 것이 되었다.


 보천보 전투(1937.6.4)라는 역사적 사실 을 토대로 한 서사시「백두산」(1947)에서 조기천은 “뉘가 인민을 위해 싸웠느냐?/ 뉘가 민전의 첫 머리에 섰느냐?”는 장중한 어조의 수사학적 질문을 앞세워, 김일성의 항일투쟁이 곧 건국의 기원이자 그가 새 역사의 주인공으로 나서야 할 이유임을 밝혔다. 이 건국서사시는 숭엄성에 입각한 집단적 일체감을 조성했다는 점에서, 화려한 수식어로 김일성을 칭송하는데 그친 시들과 차원이 달랐다. 무엇보다 이 작품은 김일성을 메시아로 제시한 것이다. 민족의 성소(聖所)인 백두산은 김일성에게 신화적 위엄을 부여하는 배경이었으며, 백두산을 근거로 항일무장투쟁사를 벌임으로써 새 나라의 기틀을 다진 것이다.


『우리의 태양』에서부터 김일성은 ‘태양’으로 칭송되기 시작했고, 박영보의「태양을 기다리는 사람들」(1948)은 이 태양이 어떤 의미를 갖는 것인지를 구체적으로 제시한 희곡이다. 1930년대 초 간도지방을 배경으로 한「유격대」(천정송, 1948)는 반 민생단(民生團) 투쟁을 이야기하는 등 항일무장투장투쟁사의 ‘복원’에 초점을 맞춘 단편소설이다. 한설야의「개선」(1948)은 김일성의 형상을 집중적으로 그려낸 첫 경우다. 김일성을 ‘대보름 달덩이’에 비유한다. “그 잘 웃는 얼굴, 웃을 때마다 두 볼에 파지는 인정머리 있고 아름다워 보이던 보조개와, 유달리 애티 있게 보이던 덧니, 억실억실하고 무한히 슬기 있어 보이던 눈”은 그의 위대함이 선량함을 바탕으로 한 것임을 강조하고 있다.


 파시즘에 대한 소련의 승리는 인민의 자유롭고 평화로운 삶을 가능하게 해준 “세기의 개가”4)로 찬양되었다.「칠현금」(김사량, 1945)의 ‘이와노브’ 대위는 ‘일본놈들’ 때문에 척추가 바스러지는 부상을 입고 몇 년 동안 버려지다시피 목숨을 이어온 노동자의 척추를 바로잡는 기적을 이루어낸다. 한설야의 단편「얼굴」(1948)은 소련군을 사심 없는 구원자로 그리고 있다. 도망치는 일본군들이 불을 질러 위험에 처한 수감자들을 소련군이 구출해주는 장면에서, 구원을 받는 등장인물은 강한 ‘사모’의 감정에 소련군의 손에 입을 맞추고 그의 얼굴을 어루만진다. 소련을 사회주의의 모국으로 간주하는 태도는 조소친선을 주제로 한 문학작품들이 전제하고 있는 바였다.


 그러나 북한이 보는 남한은 아직도 미군정에 의해 지배되고 식민탄압이 계속되는 곳으로 보았다. 38이남을 되찾는 것이 북한의 또 하나의 민족적 과제였다. 신한공사(新韓公社)는 미군정이 일본인들의 착취방식을 답습하여 설치한 악명 높은 동양척식회사의 다른 이름이었다. 남궁만의「하의도」(1947)는 신한공사의 횡포에 맞선 전라남도 무안군 하의도의 소작쟁의를 그린 희곡이다. 김사량의「남에서 온 편지」(1948)는 기적이 이루어진 38이북의 눈으로 암담하고 비참한 남한 현실을 비춘 소설이다.


 남한의 매판세력들은 풍자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송영의 희곡「금산군수」(1949)는 적대적 존재를 시대착오적 편집광이나 도덕적 백치로 그리는 풍자문학의 틀을 세운 작품이다. 그러나 남한에서의 투쟁을 그리는 일은 해방 후의 서울을 체험한 남한 출신 작가들이 자신들의 과제로 생각했던 바다. 김영석의 장편소설『격랑』(1948)과 이동규의 단편「그 전날 밤」(1948)은 이렇게 씌어진 경우다. 함세덕은 희곡「산사람들」(1950)로 제주도의 4.3항쟁을 그렸다.


 남한의 빨치산 투쟁은 ‘민주 기지’인 북한이 큰 역할을 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는 것이었다. 4.3항쟁을 그린「한나산」(강승한, 1948)이나「항쟁의 려수」(조기천, 1948)과 같은 서사시는 단선을 저지하고 통일정부를 수립하려는 남한 인민들의 투쟁 역시 민주기지로서의 북한과 김일성을 향한 믿음을 통해 전개되고 있는 것으로 그렸다. 박태민이「제2전구」(1949)에서 그려낸 두 젊은 노동자 ‘경수’와 ‘영자’의 내력은 그들이 어떤 길을 밟아 빨치산이 되었고 어떻게 새로운 윤리를 획득하였는가를 보여준다. ‘경수’는 죽어가면서도 사로잡힌 경찰과 ‘반역자’들이 처단되는 광경을 자기 눈으로 보게 해 달라고 간청한다. 6.25의 발발을 눈앞에 둔 무렵 이태준은「고향길」(1950)이라는 중편소설에서 자신의 어린 아들이 ‘국방군’에게 맞아 죽는 모습을 숨어서 지켜보아야 하는 빨치산 전사의 고통스런 상황을 그렸다. 훼손의 시대에 대한 극단의 자기 연민과 분노를 표현한 것이다.



- 시련의 경험 ; 조국해방전쟁기(1950~1953)


 북한이 6.25전쟁을 ‘세계제패의 야망을 갖는 미국의 침입으로부터 인민의 자유와 조국의 독립을 지키려는 싸움’으로 규정하면서 ‘해방전쟁’, 혹은 ‘조국해방전쟁’으로 명명되었다.  남한은 회복해야 할 ‘공화국의 남반부’였다. 이에 북한에선 국토의 ‘완정(完整)’이 과제로 제기된다. 이태준의「먼지」(1950)는 완정론을 대변한 단편소설이라 할 수 있다. 그는 38선 이남의 실상을 지옥으로 그렸다. 이갑기의 단편「38선」(1949)에서도 좌익운동에 참여했던 한 여인이 남편이 있는 평양으로 가기 위해 남한을 탈출하는 긴장된 여정을 기록, 38선은 잔혹한 폭력이 판치는 세상과 바른 이상이 실현된 세상을 나누는 경계로 보았다. 이후 이기영의「38선」(1952)에서 서울과 평양, 그리고 38선으로 갈린 강원도 농촌을 무대로 해방직후 남북한 현실과 변화의 과정을 전체적으로 조망하고 있다.


 종군에 나선 100여명의 작가들에겐 적을 무찔러 나가는 곳에서 줄을 잇는 숱한 기적을 전하는 임무가 주어졌다. 김사량의 ‘종군기’에서 읽게 되는 것은 전쟁의 속도감이다. 김사량은 개전 바로 이튿날 가장 앞서 종군길에 올라「서울서 수원으로」,「우리는 이렇게 이겼다」,「지리산 유격구를 지나며」,「낙동강반의 전호 속에서」,「바다가 보인다」등을 단 제목으로「로동신문」에 개제하였다.


 이원조는 숱한 영웅들의 실기(實記)를 소개해야 할 필요를 지적하면서, 작가들이 노트에 적은 영웅의 이력서와 전투 상황과 몇 가지 담화로 작품을 쓰려는 “노트식 영웅 제조 방법”을 비판했다. 이에 반해 한요는 실재한 영웅을 그리라는 이원조의 주문을 잘못된 것으로 몰며, 유항림의「진두평」(1951) 같은 실전(實傳)을 ‘있는 그대로의 추구에서 한 걸음도 벗어나지 못했다’고 비판했다. 영웅전은 대중적 영웅주의에 입각한 것이어야 했다. 리원우의「지금은 총 잘 쏘는 사격수」(1950)처럼 평범하게 “논밭 갈던 우리네”가 “미국놈 사냥”에 나서 “이름난 사격수”가 되었다는 이야기는 반복되었다.


 또한 전사들의 형상에서 소년의 이미지는 새 시대와 함께 성장한 새 세대로 표현되었다. 그들은 예상하기 힘든 적극적인 행동을 감행한다. 김영석은「화식병」(1951)에서 희극적인 인물 ‘박씨근’을 등장시켜 탄우를 뚫고 전투원에게 밥을 나르는 저돌적인 모습을 그렸다. ‘몸집이 작고 가늘 뿐 아니라 얼굴도 예쁜’ ‘만구’(윤세중,「편지」,1951)는 정찰을 나갔다가 미군의 목을 물어 죽이며, 열아홉 살밖에 안된 상급 전화수(박웅걸,「상급 전화수」,1952)는 폭격으로 끊어진 전화선의 양쪽 끝을 자신의 두 손으로 붙들어 통신을 보장한다. 윤세중의「구대원과 신대원」(1952)에서 ‘키가 작달만하고 허리가 날씬한’ 신대원은 양키를 잡는 구대원의 무용담을 재미있는 동화로 듣는다.


 영웅을 그리면서 특별한 일화나 예사롭지 않은 장면을 살리기 위해 ‘집중적 인상화’의 관점이 도모된다. ‘발견’의 형식을 수반하여 인물과 정황을 배치해 작자와 독자가 그들을 뒤쫓는 관람자가 된다는 점에서 이 형식은 영화적이다. 실제로 많은 소련 영화가 상영되었음을 생각할 때, 윤시철의 단편「네 번째 돌격」(1951), 김만선의「당증」(1951)이나 황건의「불타는 섬」(1952)등은 영화적 감각과 장면 제시의 수법이 집중적 인상화의 원천이었다.


 그러나 전쟁에서 영웅의 희생은 불가피했다. ‘혁명적 비극’으로 불리게 되는 영웅이 희생되는 양식은 시련의 시기를 그리는 방법의 하나였다. 김순석은「귀향」(1950)에서 적이 파괴한 고향 거리에 돌아온 화자를 통해 “살아서 원쑤에게 고향을 내맡길게면/ 지켜 차라리 제 고향의 흙으로 남자!/ 가슴에 화약을 걷어 안고/ 원쑤의 지휘처와 더불어 흩어진// 흩어진 장부의 짙은 피로/ 이 땅을 한결 두터이 깔은/ 이 거리 사람들을 과연/ 죽은 사람이라 어찌 부르랴…” 고 외친다. 전쟁영웅 ‘리수복’이 등장하는 홍건의 희곡「1211」(1951)에서, 몸을 던져 적의 화구(火口)를 막은 리수복을 기리는 공식적 목소리는 ‘생명보다 더 귀중한 것을 위해 자기 몸을 바친’ 전사들에게 ‘영생불멸의 영광’을 수여하고 있다.


 또한 피점령지의 인민은 빨치산 투쟁을 펼쳐야 했다. 천세봉의「싸우는 마을 사람들」(1953)은 농민들의 빨치산 투쟁을 그렸고, 한설야의 장편「대동강(1-2부)」(1953)은 점령된 평양을 무대로 전개되는 ‘도시 빨치산’ 투쟁을 그렸다.


 그러므로 전쟁으로 인한 시련의 경험을 통해서 김일성의 항일무장투쟁사는 가장 숭엄한 역사가 될 수 있었다. 전쟁시기에 출간된『김일성 장군의 략전』(1952)은 그를 “민주 개혁의 제창자”이자 “승리의 조직자이며 고무자”로 규정했다. 그리고 전쟁시기동안 김일성을 부르는 호칭의 하나였던 수령의 의미는 문학을 통해 더욱 구체화되었다. 애국주의는 곧 김일성 장군을 향한 충성을 의미했다. 홍순철의「수령에의 헌사-해방구 인민들이 드리는 노래」(1950), 김순석의「수령」(1950)과 같은 시에서 수령은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넘어 언제 어디서든 인민들과 같이 있으며, 모든 인민들이 마음의 고향이자 지주로 삼는 존재로 표현되고 있다. 한설야의『력사』(1953)는 수령의 지도가 어떤 것인가를 우회적으로 나타낸다.  아동혁명단을 육성해 빨치산 교육의 체계를 세우는 이야기며, <조국광복회>를 결성하고 반민생단 투쟁을 벌이는 이야기, 아동극을 지도하는 김일성의 모습 등을 담고 있다. 이 소설에서 김일성은 신심과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 존재로 부각되고 있다. 스탈린과 모택동을 칭송하고 중국지원군의 고상한 기풍을 찬양하는 시집『전우의 노래』(1953)가 출간되기도 했다. 반면 미국 제국주의는 악의 근원으로, 풍자의 대상이 되었다. 한설야의『대동강』은 원자탄으로 인종 청소를 계획하는 미군 사령부의 장교를 그리고 있고,『승냥이』(1951)는 미국인의 본성을 탐구한 수작으로 평가되고 있다. 송영의 희곡「강화도」(1953)는 미국의 침략이 오늘만의 일이 아님을 그렸다. 백인준은 장편시「얼굴을 붉히라 아메리카여!」(1951)를 통해 미국의 지배세력을 히틀러의 후예로, ‘넥타이를 맨 식인종’으로 야유했다.


 조국해방전쟁은 결과적으로 북한문학에 부여되는 정치적 명령을 더욱 긴급한 것으로 만들었다. 김일성의 항일무장투쟁사는 이 전쟁을 설명하는 역사적 근거로 구체화 된다.




- 사회주의를 향하여 ; 전후복구와 사회주의 건설기(1953~1958)


전후 북한의 경우 사회주의는 충분치 못한 여건에서 추진되었다. 사회주의 건설은 ‘사상의 힘’을 원동력으로 ‘사상적으로’ 규정되어야 했다. 이에 반한 임화는 간첩이자 반동사상의 표상으로 매도되었다.「너 어느 곳에 있느냐」와「바람이여 전하라」,「흰 눈을 붉게 물들인 나의 피 우에」는 임화가 염전사상을 유포했다는 혐의를 입증하는 증거로 활용되었다. 이태준, 김남천, 박찬모, 설정식, 오장환 등의 남로당 계열의 문인들도 처형되거나 숙청된다.


 작가들은 투철한 당성을 발휘해야 할 존재로, 기업소와 농촌으로 파견되었다. 적을 향한 증오를 일깨우는 것은 복구가 시급하고 필연적임을 역설하는 방법이 된다. “우리는 잊지 않으리라/ 우리가 싸운 그 모든 날을…”이라는 외침이나, “한 장의 벽돌에도 한줌의 흙에도/ 쓰러진 전우의 뜻을 잇고/ 폐허된 거리의 울분을 심어/ 앞장서 가리라”9)는 다짐, “증오를 불러/ 더는 용서 할 수 없는/ 미국 강도의 만행을 웨쳤을 때/ 그들의 숨결도 가삐/ 두 주먹에 분노를 쥐고” 증산투쟁에 나섰다는 보고는 되풀이되었다. 공산주의는 사상의 근원으로 김광섭은「공산주의 태양 아래」(1957)작품을 통해 “갱도에 밤이 온 적이 없소/ 잎지는 가을 눈 오는 겨울/ 사시장 봄이요 노래라오/ 눈부신 공산주의 태양 아래”라고 표현한다. 유항림의 단편소설「직맹반장」(1954)은 새 것의 편에 서지 못한 낡은 인물을 생활의 구체성 속에서 살려낸 점이 주목을 받았다. 그러나 평론가들의 관심을 끈만큼, 작가가 낡은 것을 그리는데 너무 치중했다고 비판하고 있다. 이런 논의는 사회주의 건설을 그리는 사회주의 리얼리즘이 어떤 것이어야 하는가를 밝혔다. 변희근의「빛나는 전망」(1954)은 부정인물을 적절하게 그린 점에서 긍정적 평가를 받았다. 윤세중의「시련속에서」(1957)는 선진 기술 도입에 힘써 기술 증진을 꾀하는 전문지식인의 분투 과정을 그린 장편소설로 전후 복구의 핵심 과제를 그렸다.


 농촌에서 사회주의 건설은 상대적으로 큰 변화를 요구했다. 이동춘의 희곡「새 길」(1953)에서 제대군인이 고향에 돌아와 협동조합의 관리위원장을 맡아 애쓰는 이야기 형식을 취했다. 그러나 비평가들은 갈등이 뚜렷하고 심각하게 제시되지 않은 점을 지적했고, 한설야는 이 희곡을 갈등 제시에 실패해 도식주의로 흐른 경우로 평가했다. 서정시들은 풍요를 약속하는 사회주의를 예찬했다. 민병균의「나의 새 나의 고향」(1955)에서 낙원을 눈앞에 펼쳐보인다. 김순석의「황금의 땅」(1957)에 실린 시들도 그렇다. 이근영의 중편소설「첫수확」(1956)은 협동화 과정을 그린 교과서로 의미를 갖는다. 천세봉의「석개울의 새봄」(1958-1963)은 전후 북한 농촌의 개변 과정을 폭넓게 그린 3부작의 장편소설이다. 여러 인물들을 그려 북한 농촌에서 진행된 이 급격한 변화가 얼마나 극심한 갈등을 수반한 것이었던가를 엿보게 한다.


 전후 복구의 열의는 항일무장투쟁기나 전쟁 시기를 돌이키는 방식으로 또한 요구되었다. 위대한 과거를 그리는 내면적 형식은 서사시였다. 홍순철의 장편서사시「어머니」(1954)는 혁명적 어머니상을 그렸고, 민병균의「조선의 노래」(1955)는 마산전투에서부터 이른바 ‘전술적 후퇴기’와 그 이후의 ‘반돌격전’까지를 시간적 배경으로 그린 서사시다. 김학연의 서사시「소년 빨치산 서강렴」(1953) 역시 조국해방전쟁의 승리가 수령의 인도와 평범한 인민들의 헌신으로 인해 가능했음을 말하고 있다.


 또한 윤세중의 중편소설「도성 소대장과 그의 전우들 」(1953)을 비롯한 여러 영웅전들이 씌어졌고 영웅전을 발전시킨 일대기 형식도 시도되었다. 박태영의 희곡「리수복 영웅」(1956)은 ‘리수복’의 남다른 어린 시절을 조명한 짧은 일대기다. 이종순, 최건의 희곡「다시는 그렇게 살 수 없다」(1954)에서 당 지도원은 바른 정치적 입장이었던 것인가를 판정하고 몸소 실천해 보이는 인물이다. 한성의 희곡「어랑천」(1956)에선 보통 농민들도 특별한 훈련 없이 공작자로 활약한다. 그리고 위대한 과거를 장엄한 역사로 쓰려는 시도도 나타난다. 박웅걸의 장편소설「조국」(1956)에서는 빼앗겼던 땅을 되찾는 시련의 극복이라는 이야기로, 황건의 장편「개마고원」(1956)은 다양한 역사적 문맥들을 통해 제시된다. 장황한 모험과 극적인 승리의 이야기는 결국 위대한 과거가 항일무장투쟁을 기원으로 하는 것이었음을 말해준다.


 김일성의 항일혁명역사를 건국의 역사로 쓰려는 시도가 조직적으로 나타난 것은 반종파투쟁이 마감된 이후다. 한설야는 장편소설「설봉산」(1956)에서 1930년대 국내의 적색농민조합운동과 김일성의 항일무장투쟁을 연결했다. 농조 운동을 주도한 긍정인물들은 농민 운동이 무장투쟁과 유기적으로 연계되어야 할 것이라는 생각에서 김일성의 유격대로 들어갈 것을 결심한다. 그것은 곧 ‘혁명의 원 곬’을 찾아가는 것으로 묘사되었다. 이기영은 대하소설「두만강」(1954~61)으로 외세와 매판세력에 맞선 민중들의 민족해방투쟁사를 썼다. 이 소설은 위대한 과거 그리기를 민족사 쓰기로 확대한 것이었다. 민족해방투쟁사는 ‘유일한’이야기였고, 이 소설의 형식은 뒷날 김일성의 혁명역사를 문학으로 복원한다는 기치 아래 씌어지는 <불멸의 력사>총서를 예고하는 것이었다.


 이 시기는 사회주의 리얼리즘의 의미와 내용을 확인한 때였다. 때문에 사회주의 건설의 과정을 보고하는 것과 ‘위대한 과거’를 그려내는 것은 본질적으로 다른 것일 수 없었다. 1950년대 말 김일성의 단일지도체계는 확립되었다. 당은 1959년부터 1960년대에 걸쳐 당 중앙위원회 직속 <당역사연구소> 주관으로「항일빨치산 참가자들의 회상기」12권을 출간하였고, 이 회상기들은 무장투쟁이라는 엄숙하고 빛난 전통을 구체적 이야기로 살려냄으로써 어떤 다른 해석도 있을 수 없음을 못박는다.




- 천리마와 같이 달리자 ; 천리마 대고조기(1958-1967)


 1958년부터 본격화되는 천리마 운동은 공산주의 건설을 새 목표로 새웠다. 수령이 모든 인민의 어버이라는 혁명적 대가정론은 이미 이 시기에 구체화 되었고, 주체시대로의 길을 연 시기였다. 항일유격대식으로 살고 투쟁해야 한다는 것은 최고의 명령이었고, 이 천리마 운동은 ‘유격대 국가’로 가는 길을 열었다.「우리도 천리마를 타자」는 제목으로 『조선문학』에 실린 한 정론은 천리마 시대의 목표가 짧은 시간에 앞선 나라들을 따라잡아야 하는 것이라고 설명하면서, 그와 같이 천리마 시대의 문학도 짧은 시간 안에 한 계단 높이 올라가야 함을 역설한다. 김일성은 교시, <천리마 시대에 맞는 문학예술을 창조하자>(1960.11.27)에서 문학예술이 천리마의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고 다시 비판, 새 생활을 창조하고 있는 우리 시대의 영웅을 볼 줄 모르는 것이 작가들의 큰 약점이라고 했다. 더불어 김일성은 문예조직의 통합을 지시한다. 김일성의 교시는 천리마 기수들을 그린 소설들에서 실천되고 있었다. 천리마 기수들을 형상화한 수작으로 꼽힌 단편소설들은 김병훈의「해주-하성에서 온 편지」(1960)와「길동무들」(1960), 군정웅의「백일홍」(1961), 진재환의「고기떼는 강으로 나간다」(1963), 리병수의「령북땅」(1964)등이다. 윤시철의「거센 흐름」(1964)은 천리마 기수를 그린 장편소설로, 고층건물이 들어선 평양의 발전상과 노동자들의 윤택한 삶, 열의와 현장의 노동경험을 바탕으로 한 기술적 창안의 이야기다. 그러나 속도를 시적으로 형상화하는 것은 어려웠다. 정천례의「방직공 처녀에게」는 아름다운 방직공 처녀와 방직기의 움직임을 통해 속도의 희열을 차분하게 형상화해낸 드문 경우에 속한다.


 항일무장투쟁의 과정에서 창작, 보급된 항일혁명문예의 발굴은1950년대 말 항일혁명전통의 부활에 수반된 과제로 떠오른다. 1959년에 나온「조선문학통사」는 항일혁명문예를 김일성 부대가 무장투쟁을 벌이며 창작, 보급한 것으로 설명했다. 항일혁명문예를 대표하는 혁명연극「혈해」의 존재가 처음으로 지면에 소개된 것은 1953년 무장투쟁의 전적지를 답사한 송영의 보고서「백두산은 어데서나 보인다」(1956)에서였다.「혈해」는 3막으로 된 비극인데, 아버지가 독립군으로 집을 나가고, 일제 박해 속에서 큰아들 ‘원남’역시 유격대로 떠나면서 어머니와 이별하는 1막에 이어, 부상당한 유격대원을 쫓아온 일본군이 그를 숨긴 곳을 말하지 않으면 어린 아들 ‘을남’을 죽이겠다고 위협, 어머니는 이에 굴하지 않고 을남이는 희생당하는 데서 2막이 끝난다. 3막에서 어머니는 유격대로 들어가 재봉대원이 되고, 유격대는 어머니가 살던 부락을 습격해 반동지주와 악질 군경들을 소탕하고 인민들을 해방시킨다. 이에 안함광은 그의 문학사에서 김일성이「혈해」를 ‘각색’했다는 주장을 한다. 이런 가운데 한 비평가가「혈해」의 각본으로 발굴되었다는「혈해지창」을 소개한다. 윤세평의「혁명연극 <혈해의 노래>에 대하여」(1961)가 그것이다. 윤세평은「혈해의 노래」, 곧「혈해지창」을 항일유격대에 의해 씌어지고 공연된 1930년대 혁명적 문학유산의 하나로 간주했다. 윤세평의 소개가 이루어진 후 안함광은 갑자기 김일성이「피바다」「성황당」「경축대회」등의 혁명연극을 ‘친히’ 창작했다고 주장한다. 김일성이 항일혁명사를 이끌었던 것처럼 항일혁명문예를 이끌어 나갔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각본이 소개된 지 10년이 안 되어「피바다」란 이름으로 영화와 혁명가극이 만들어진다.「혈해」가 「피바다」로 확정된 것이다.「혈해지창」이「피바다」가 되는 과정은 바로 항일혁명문예를 발굴하는 과정이었다.


 김일성은 <혁명적 대작을 더 많이 창작하자>(1963.11.5)에서 항일혁명역사나 조국해방전쟁을 다룬 소설은 신통한 것이 없다고 하면서, 이 주제는 대작(大作)으로 쓰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교시를 내렸다. 무장투쟁사는 이제 대작(大作)의 영웅서사시로 씌어져 가야 했다. 석윤기의「시대의 탄생」(1부,1966)은 대작논의가 진행되며 나온 장편소설로 그 본보기가 되었다. 조국해방전쟁사를 다룬 이 소설은 폭넓은 역사적 무대를 확보하고 여러 인물들의 장성과 전락의 과정을 유기적으로 엮어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주제는 일관되게 관철된다. 조국해방전쟁은 제국주의 침략에 맞서 민족의 정통성과 자주성을 지키려는 전쟁이며, 따라서 항일무장투쟁의 연장이라는 것이다. 박태원의「계명산천은 밝아오느냐」(1965-66)는 갑오농민전쟁을 소설화한다는 구상 아래 씌어진 역사소설이다. 역사적 사실들과 여러 에피소드들을 잇고, 농민으로부터 봉건 지배층에 이르는 인물형상을 풍성하고 생동하는 시정 세태의 장면들을 통해 제시했다. 사건은 동시적으로 전개되어 공간적 병치의 방법이 구사된다. 특히 세태의 파노라마는 이어지기보다 겹쳐지고, 현재형 시제에 길게 미끄러지는 서술과 독백들, 대화문의 오랜 지속은 역사 이야기를 보다 입체화한 것이었다. 이 소설은 이야기의 계기적 완결성에 집착하는 북한소설의 일반적 정형을 벗어난 점에서 찬사를 받는다.


 김일성의 생일 날짜를 따 1967년 4월 15일, <4.15 문학창작단>이 결성됨으로써 항일혁명역사를 대작으로 쓰는 작업은 시작된다. <불멸의 력사>는 이 <4.15 문학창작단>의 산물이었다.


 천세봉의 장편소설「안개흐르는 새 언덕」(1966)을 각색한 것으로, 1967년 1월 김일성이「내가 찾은 길」이란 영화를 보고 내린 교시 <혁명주제 작품에서의 몇 가지 사상미학적 문제>(1967.1.30)는 주체시대의 문학예술이 어떠해야 하는가를 알린다. 김일성의 비판은 혁명의 역사를 ‘왜곡’한데 대한 경고였다. 이 경고는 집필과 검열에 대한 조직적 지도 강화를 요구한 것이었고, 창작이론과 공인된 본보기를 보이는 것이 필요하게 되었다. 이에 북한문학은 새로운 출발점에 선 것이다.




- ‘한 몸’의 시대, 변화의 전기 ; 주체시대(1967~ ) 


 유일지도 체계가 확립되며 시작되는 주체시대에 들어서 문학은 수령을 유일하고 궁극적인 주인공으로 하는 이야기를 되풀이해야 했다. 인민대중과 수령이 ‘한 몸’이라고 강변하는 상황은 전제적인 것이라 아니할 수 없다. 이로써 북한문학의 주인공은 하나가 되었다. 1967년 봄 로동신문에는 항일빨치산들이 보여주었던 ‘혁명적 지조’를 본받자는 글이 게재된다.


 정문향의「그 기발 아래」(1972)를 위시한 숱한 시들은 장군이고 수령이자 어버이인 그의 영도 업적을 기렸다. <불멸의 력사>는 수령의 혁명역사를 다룬 장편소설 총서다. 이 총서의 첫 권은 1972년에 나온「1932」(권정웅)이었다. 총서는 1994년「승리」(김수경)가 출간되기까지 모두 20편에 이르는데, 장편들간에 등장인물이 통일되지 않고 내용이 연결되지 않는 등의 문제가 있지만, 전체적으로 김일성 이야기를 다룬다. 이 작업은 주체시대를 통해 지속적으로 전개되는데, <불멸의 력사>가 씌어지기 시작하면서 <4.15 창작단>에 의해 김일성의 아버지 김형직을 주인공으로 하는 장편소설「력사의 새벽길」(1972)이 나왔고, 김정일의 생모인 김정숙의 투쟁과정을 그린 장편소설「충성의 한길에서」5부작이 출간되기도 했다. 김정일 역시 수령의 혁명위업을 계승하는 형상으로 그려졌다. 총서 <불멸의 력사>는 허구가 아니라 그 자체가 역사서인 것으로 간주되었다. 역사를 대상으로 하는 작가는 사실 자체에 집착하기보다 그것의 ‘사상적 본질’을 드러내는 데 주력해야 했다. 그것이 바로 ‘발굴’의 이데올로기였다. 이 총서는 ‘창조’와 ‘추구’라는 신화의 근본 범주를 벗어나지 않는다. 여기서 김일성은 모든 것을 이룩한 창조자이며 장래 역시 담보하는 역사의 궁극적 주재자다. 이 승리의 신화는 집단적 나르시시즘을 충족시킬 뿐 아니라, 모든 문제가 지도자에 의해 해결되리라는 믿음을 갖게 하는 사회적 환타지를 제공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불후의 고전적 명작’들로 명명된「피바다」,「꽃파는 처녀」,「한 자위단원의 운명」의 연극들은 1970년을 전후하여 영화와 가극 및 소설로 제작되면서 주체문예의 원칙들을 가장 훌륭히 구현한 기념비적 걸작으로 간주된다.


 1970년대 중반을 넘기며 지식인은 그 역할과 사회적 위상이 높아지면서 인물관계의 긍정적 중심으로 진입한다.「평양시간」(최학수,1976)은 전쟁으로 파괴된 평양을 복구하는 이야기로, 김일성이 조립식 건설 방법을 교시해 이른바 ‘평양속도’를 달성케 했다는 역사적 예를 소재로 한 것이다. 변희근의「생명수」(1978)는 치수의 상상력을 펼친 장편소설로 해마다 홍수 피해를 보는 수난의 땅에 웅대한 관개공사를 구상하는 것은 수령이다. 이 소설이 그리는 것은 수령의 구상이 구체화되는 과정이다. 엄단웅의「령마루」(1980)는 지식인의 노동계급화가 아니라 노동계급의 지식인화를 요구한다. 이들 소설은 전문지식이 지도의 수준에서 발휘될 때 그 성과가 빠르고 크게 나타나리라는 생각을 표현하고 있다. 결국 모든 인민은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지식인이 되어야 했다.


 그러나 수령의 역사쓰기에서 등장인물은 수령의 가르침을 실행하는 기능적 형상으로서의 한계를 가졌다. 그래서 김보행의 장편소설「로동가정」,「녀당원」은 수령을 따르는 역사 쓰기의 형식을 취한 것이지만 충성하는 자세나 마음가짐을 성격화하여 어느 정도 인물의 개별성을 살렸다.


 김정일은 사회기풍을 쇄신할 새 지도자로 등장했다. 정치적 후계자로 김정일의 위치가 공식적으로 확인되는 1980년 10월의 6차 당 대회 이후 그에 대한 예찬은 본격화 되었다. 그는 ‘친애하는 지도자’가 된 것이다. 그는 주체사상을 체계화하고 주체문예를 지도한 인물로 부각되었다. 종자론이나 속도전의 개념을 밝혀 문예학 발전의 전기를 마련했다는 것이 김정일의 문학지도 업적으로 칭송되는 사항들이다. 오늘날 그의 저서「영화예술론」(1973)은 문학예술에 관한 김일성의 여러 언급들과 더불어 ‘불후의 고전적 노작’ 가운데 하나로 꼽히며,「주체문학론」(1992)은 주체문학론의 최종적 결산으로 간주되고 있다. 김정일의 지도자적 덕성을 찬양하는 시들은 계속 씌어졌다. 그러나 운율의 평판성은 북한 시 전반에서 나타나 김정일을 그린 시 역시 운율은 매우 단조롭다.


 「아침해」(현승걸, 1988)는 김정일을 주인공으로 한 첫 장편소설이다. 이어 1970년대 초 영화제작을 지도하는 김정일을 그린「예지」(리종렬, 1990)와 전쟁 시기 특별한 천품에 총명한 어린이 김정일의 활약상을 담은「불구름」(박현, 1991)이 나왔다. 이들 소설에서 그는 놀라운 예지와 열정으로 ‘대범하고 통이 크게’ 갖가지 사업을 지도하고 있다.


 1990년대 초부터는 김정일의 통치사를 그린 <불멸의 향도>총서가 씌어지기 시작한다. 장편소설「푸른하늘」(권정웅, 1992),「동해천리」(백남룡,1996),「력사의 대화」(정기종, 1997),「평양은 선언한다」(리종렬, 1997)등이 그것이다. 그는 해외 동포를 끌어안고 연구사업을 이끌며 광산과 공장의 현지 지도를 아끼지 않는다. 여기서 김정일은 모든 일을 주관하는 위대한 인간으로 제시되고 있다.


 1980년 10월 6차 당 대회에선 공산주의적 인간의 전형을 ‘숨은 영웅’으로 규정하면서 ‘숨은 영웅의 모범을 다라 배우기 운동’을 대중적으로 벌일 것이 제기되었다. 숨은 영웅을 그리자는 주장은 여러 매체들에 의해 인민들의 실제 생활이 드러나고 그에 대해 관심을 기울이게 된 상황을 반영하는 것일 수도 있었다.「봄은 아직 멀리에」(신용선, 1988),「청춘의 시작과 끝은 언제」(김용환, 1990)의 주인공들 역시 막 고중을 졸업한 청년 개발자이고 농촌의 청년분조원들이다. 과학자나 간부는 아닌 그들은 주체시대가 양산한 보통 신세대라 할 것이다. 숨은 영웅이 되어야 하는 젊은이들인 셈이다. 이 시기에 이르러 북한문학은 드디어 애정문제를 본격적으로 다루기 시작한다. 이혼이라는 쉽지 않은 주제를 놓고 부부간의 갈등과 애정의 풍속을 그린 백남룡의「벗」(1988)이나 젊은이들의 애정심리를 생동감 있고 대담하게 묘사한「청춘송가」(남대현, 1988)는 그 뚜렷한 예다.


 1980년대 중반을 넘기며 과학기술의 증진은 국가적 과제가 아닐 수 없었다. 과학에 대한 대중적 관심을 높이기 위한 장르로 ‘과학환상소설’이 창작되었다. 이 소설을 대표하는 작품으로「푸른이삭」(황정상, 1988)이다. 줄거리는 ‘바다개발총연구소’의 연구사들이 서해 한 구역의 바다 속에서 항암 성분을 갖는 벼를 재배하는 데 성공한다는 것이다. 정신과 양심의 힘이야말로 과학을 옳은 방향으로 발전시키는 동력이라고 말한다.


 1980년대 말 이후 북한문학에서 일정하게 나타나는 경향은 소재를 넓히고 개성적 형식을 모색하려는 것이다. 소재의 확대는 형식적 변화를 동반했다. 그러나 소재의 확대와 더불어 구체적 생활에 시선이 닿으면서 중심 줄거리보다 곁가지와 세부의 비중이 커지는 양상이 초래되었다. 현희균의 장편「새 땅」(1991)은 그런 보기다. 간척사업을 벌이는 기업소의 지배인과 노동자들이 갖는 난관을 헤치고 ‘새 땅’을 얻는 과정을 그린 이 소설은, 많은 부분을 지배인을 중심으로 한 여러 인물들의 생활을 담아내는 데 할애하고 있다.


 작가들이 나름의 개성과 독창성을 살려야 한다는 것은 1990년대에 들어 부각된 구호다. 이는 북한문학이 단조롭고, 독자들이 외면하고 있다는 진단을 할 수 있게 된 결과다. 새로운 개성적 형식의 소설로 거론되었던 작품은 정창윤의 단편「의리」(조선문학, 1990.4)다. 조국해방전쟁 시기, 한 인민군 지휘관이 수령에 대한 혁명적 의리를 지킨다는 이 소설의 내용은 특별하지 않다. 그러나 이 소설은 현재와 과거를 유기적으로 결합하는 ‘비약과 함축의 구성수법’을 구사하고 있다. 수령과 지휘관간의 지난 만남을 돌이키는 회상의 수법은 구성을 새롭게 했고, 이로써 새로운 효과를 내게 했다는 것이다. 또 다른 새로운 형식적 방법의 하나는 소설의 이야기를 간접화하는 것이다. 중편소설「향토」(김삼복, 1988)는 그 한 예다. 성인이 된 ‘나’가 어린 시절의 경험과 기억들을 돌이키는 방식으로 전개되는 이 소설에서 과거의 사건들은 끊어지고 이어지며 또 어린아이의 제한된 시점을 통해 여과되어 나타나기도 한다. 회상이라는 장치의 거리감과 ‘나’의 주관성에 의해 이야기는 간접화되고 있다.



마무리


 북한문학이 장차 어떻게 변할 것인가를 예측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여태까지 그랬듯이 북한문학은 북한사회와 북한 체제의 성격 변화에 크게 좌우될 것이다. 전정한 변화란 얼마나 내면의 깊이를 확보하느냐에 달린 문제이기 때문이다.


 과연 북학문학의 본질적 변화는 시작된 것일까? 북한문학이 개별적이고 독창적인 눈을 가질 때 언젠가는 개별적이고 독창적인 이야기를 하게 되지 않을까?

<출처: 이용웅 교수의 북한문화산책>
http://nkculture.ac.kr/Body/BBS.asp?TB=free&Mode=V&Num=1650&Page=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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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 북한최고인민회의에서 대의원선거(3월8일) 및 김정일을 국방위원장으로 재추대(4월9일)하였다.


최고인민회의
(最高人民會議)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입법권을 행사할 수 있는 최고 주권기관이다. 1946년에 발족되었다. 대한민국의 국회에 해당되는 곳으로 지역이나 군으로 이루어진 선거구마다 선출된 대의원에 의해 구성된다. 조선로동당에 소속된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대의원의 임기는 5년(1992년 4월까지는 4년)이고, 인구 3만 명당 1명이 선출되며, 제11기 대의원 수는 687명이었다. 대의원 선거는 대체로 100% 투표율에 100% 찬성률로 나타난다. 일반 법령과 결정은 재석 과반수, 헌법 수정 보충은 재적 2/3의 찬성으로 의결된다. 기구에는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와 부문별위원회가 있다. 이중 부문별위원회는 법제위원회, 예산위원회 등이 있다. <출처: 위키디피아>

올해 3월에 있었던 제12기 최고인민회의 대의원 선거에서는 이상의 주요인사들이 대부분 재선되었다. 사실 최고인민회의는 2008년 8월에 실시되었어야 하나, 김정일 위원장의 건강문제와 미국의 테러지원국 해제 시점이 맞물려 있어 늦춘 것으로 보인다. 선거에서 선출된 이들은 '2012년 강성대국'을 이끌 책무를 부여받게 되었다.  전반적으로 국방위원회의 권한이 강화되었다는 것은 '체제유지와 북한주민결속'을 위한 조치로 여겨진다.

한편, 후계자로 지목되고 있는 김정일의 세번째 아들 김정운이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이 되는가도 이번 선거의 관심이었는데, 결과는 '아니오'였다. 사실 김정일도 후계자로 확정된 후 2년이 지나서야(1982년) 대의원으로 선출되었기 때문에 아직 시기상조라고 여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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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부위원장: 조명록(유임)
부위원장: 김영춘(유임), 리용무(유임), 오극렬(2월 임명)
위원: 전병호(유임), 김일철(유임), 백세봉(유임), 장성택(신임), 주상성(신임),우동측(신임), 주규창(신임), 김정각(신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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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각에서는 후계작업과 관련한 모종의 변화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으며, 특히 이와 관련, 장성택 노동당 행정부장이 국방위원회 위원으로 선출되고, 최근 김 위원장을 빈번히 수행한 점이 부각되고 있다.

한편, 남북간 경제협력 사업을 담당하던 민족경제협력위원회(민경협)의 위원장을 임명하지 않고, 민경협이 내각기구에서 제외된 것도 주목할 만한 사실이다. 이명박 정부들어 경색된 남북관계를 반영하는 듯 하며, 이러한 북한의 조치를 미루어 볼 때 남북관계는 당분간 현상태보다 개선되기는 어려울 듯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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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과기대를 기억하소서
Remember the Pyongyang University of Science and Technology

 
 
북한선교
 
우리나라는 현재 IT 개발자 부족으로 많은 기업이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해 인도?베트남 개발자를 고용하지만, 이들은 개발 능력은 낮고 영어로 소통해야 한다는 점 때문에 기업이 선뜻 엄두를 내지 못한다. 여러 대안을 모색하던 중 조선족 IT 인력을 대안으로 생각하게 됐다.  옌볜이나 선양에 있는 조선족 IT 인력들은 경력이 짧고 아직 기술 수준이 높지 않지만, 옌볜과학기술대 졸업생을 모 외국계 기업에서 개발자로 채용했는데 실력이나 성실성 면에서 만족할 만한 수준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옌볜과학기술대학에 방문했다가 조선족 IT 개발자로부터 뜻밖의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북한 IT 개발자들이 직접 만든 소프트웨어(SW)의 기술 논의했는데, 개발 수준이 남한과 비교해 손색이 없었고 특히 개발 인력의 경력과 개발 기간을 고려할 때 상당한 수준이었다. 북한 개발자 중에도 상당한  SW 개발 기술력을 가진 사람이 많다고 하니 향후에 우리나라의 기획력과 경험을 바탕으로 북한 IT 인력과 함께 일하게 된다면 또 한번 IT 강국 코리아의 위상을 높이고 통일도 한 걸음 다가오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이수정 이포넷 사장, 전자신문 2009.2.27.
 
 
남북경협에 있어서 ‘질투와 괴로움(사11:13)’을 통해 남북한을 하나 되지 못하게 하는 ‘분열의 영’은 주 이름의 권세 아래 깨뜨려졌음 선포합니다. 남북이 조그마한 부분에서부터 겸손의 화해와 회복을 꿈꾸게 하소서. 가슴과 가슴이 맞닿고 마음과 마음이 통하는 통일을 꿈꾸게 하소서.

We proclaim that under the authority of the name of the Lord, the spirit of division that has kept North and South Korea from becoming one through "jealousy and hostility" (Isaiah 11:13) has been crushed.  Let North and South Korea dream of humble reconciliation and restoration beginning with the smallest areas.  Let them dream of a unification where hearts touch and minds understand one another.
 
연변과기대 조선족의 작은 소식을 통하여, 통일한국을 이끌어갈 젊은 북한 청년들의 잠재적 가능성과 그들을 양육하게 될 평양과기대(PUST)의 역할을 기대합니다. 북한을 변화시킬 청년들을 예비하소서. 주님의 사랑으로 양육할 기회를 주소서. 하나님이 정하신 때에 가장 좋은 방법으로 개교할 수 있게 하소서.

Through the news of the ethnic Korean Chinese at the Yanbian University of Science and Technology (YUST), we look forward to the role of the Pyongyang University of Science and Technology (PUST) which will nurture young North Koreans with latent potential to lead a unified Korea.  Prepare young people who will change North Korea.  Give opportunities to nurture them with the Lord's love.  In Your time and in the best way let PUST be opened.
 

PN4N 편집부 제공

오늘 기도제목에는 대학동아리선배가 등장하네요..^^
선교사가 직접 들어갈 수 없는 지역에는 비지니스선교사, 특히 IT관련 분야의 전문가들이 인기가 있는 것 같습니다. 북한이든 중동이든 현재로서는 가장 현실적인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더 많은 전문인 선교사들이 헌신할 수 있도록 기도해야 하겠습니다.  

Posted by heavymango

  작년 9,9선언 이후 기독교계 통일운동을 하는 분들이 뜻을 모아 온라인 기도운동 사이트(www.uniprayer.com)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이 사역의 진행을 지켜보면서 연합운동이 얼마나 힘들고 고된 과정인지를 다시 한번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모두가 연합과 네트워크의 필요성을 절감하지만, 자기가 소속된 단체가 우선인지라(저 역시도 그렇게 되더군요....ㅠㅠ) 그리고 참여하는 분들의 합의가 있어야 진행되는 구조상  사역의 진행속도가 상당히 지연되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현재 일반인들에게 북한선교정보를 제공하는 수단이 없어 결국 작년 10월 잠정폐쇄하였던 러브포앤(www.love4n.org)를 다시 오픈하게 되었습니다. 약 2년전, 한국기독교통일포럼이라는 모임에서 50대 이상 통일운동하시는 어르신들을 모시면서, 이분들의 북한선교/통일에 관한 열정에 도전을 받게 되었고, 30대 운동가로서 내가 할 수 있는 사역, 어르신들보다 더 잘할 수 있는 사역이 무엇일까 기도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던 중 한 북한선교사이트에 접속했는데, 제가 가고 싶어했던 세미나가 이미 끝나버린 것이었습니다. 보통 북한선교행사, 기도제목을 자기 단체 홈페이지에만 올리기 때문에 북한선교관심자들이 어떤 북한선교행사, 기도회가 있는지, 언제 참여할 수 있는지 한 눈에 볼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뜻이 있는 분들의 도움을 받아 2008년 1월 러브포앤(www.love4n.org)을 오픈하였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푸심으로 올해 통일소식을 빠르게 전해주는 커뮤니티인 통일메타블로그 통블로그(www.tongblog.kr)도 오픈하게 되었네요...^^


사실 가장좋은 것은 각 선교단체의 담당자들께서 공지사항을 올려주시는 것인데...북한선교 NGO관계자들께서 여러가지 일들을 하시다 보니 과도한 업무로 인해 자기 홈페이지에 소식을 올리는 것도 버거워 하시더군요...ㅠㅠ

혹시 이 사역에 관심이 있으신 분들은 제게 쪽지나 메일을 보내주세요.....운영자로 섬겨주실 분...일주일에 한시간 정도 2-3단체의 사이트를 돌면서, 그리고 종이 소식지 중에서 소개할 만한 내용들을 포스팅해 주실 분들이 필요합니다. 지금은 저와 2명의 조교들이 하고 있는데....조금 버겁네요....ㅠㅠ

북한선교활성화를 위하여 여러분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Posted by heavymango
이만열 교수님의 kpi연례보고 발표자료입니다.(바로가기 링크)
Posted by heavymango
한반도평화연구원(다운받기 링크)
Posted by heavymango
아이들이 많이 넘어오고 있습니다!

현장에 다녀온 일꾼이 잠을 이루지 못하고 있습니다.
얼마 전 갔을 때 다리 밑에서 거적떼기를 깔고 추위조차 피하지
못하며 쓰레기통을 뒤져 먹거리를 해결하는 아이들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최근 다시 현장에서 소식이 들려옵니다.
북한의 어린이들이 중국 쪽으로 많이 넘어오고 있다는 것입니다.
먹을 것이 더욱 곤핍해 지는 시절이라 필사각오로 중국에 먹을
것을 찾아 오기 때문입니다. 이런 소식을 들으며 회개하는 것은
음식을 많이 먹어 살이 찐다고 걱정하며 다이어트에 신경을 곤두
세우는 우리들의 악행 때문입니다.
특별히 고난 주간에 주님 앞에서 우리들이 어떻게 서서 기도하며
소위를 돌아봐야 하는지를 기억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어린아이들이 내게 오는 것을 막지 말라고 하셨던 주님,
북한의 수많은 어린이들이 먹을 것을 찾아 중국에 넘어와
유리걸식하는 안타까운 상황을 아룁니다. 먹을 것을 너희가
주라고 하셨던 주님의 말씀대로 우리로 북한 어린이들의 문제가
남이 아닌 바로 내 아이들이 굶주리는 것으로 동일시하며 기도할
수 있는 애통하는 마음을 주옵소서. 또한 굶주리는 아이들에게
먹을 것을 주는 것과 동시에 복음이 전해지게 하시고 아이들 모두
생명의 말씀을 듣고 영원한 생명되신 주님을 찬양하는 자리에 서게
하여 주옵소서.
 모퉁이돌선교회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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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에 당신의 마음을 가진 지도자들을 세워 주옵소서”

2008 서울평화상 수상자 수잔 솔티 이메일 인터뷰


*어떤 계기로 북한인권운동을 하시게 됐나요?

 

제가 디펜스포럼재단의 대표가 되었을 때에 저는 이 협회가 미국의 안보와 국방에 노력을 기울이는 만큼이나,자유와 민주주의 그리고 인권과 관련해서도 최대한 많은 노력을 기울이게 만들어야겠다고 결심했습니다.미국과 한국 같은 민주국가에게 위협이 되는 나라들은 그 나라의 자국민들에게도 위협을 일삼기 때문입니다.그래서 저는 당시의 소련,쿠바,중국,그리고 여타 독재국가의 망명자들을 받아들이는 일을 시작했고,북한의 탈북자들도 받아들이기 원했습니다.저는 1996년에 탈북자들을 미국으로 데려오기 시작했으며 1997년에는 처음으로 탈북자들을 데려와 미국 내에서 공개적으로 증언을 하게 하는데 성공했습니다.그들이 바로 고영환씨와 최주활 대령이었습니다.이때부터 저는 해산의 고통으로 북한을 품기 시작했는데,이는 북한의 인권에 대해서 관심을 갖는 사람들이 너무나 적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북한사랑의선교부 소식지 북사랑 2009. 1. 제 3호)


 

<기도제목>


1.대학생들의 이런 움직임들이 기도모임과 북한을 품고 활동하는 실질적인 모임으로 이어지도록 기도합시다.

2.북한의 인권에 더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갖게 해달라고 기도합시다.

3.북한의 인권에 대해 지속적으로 중보할 수 있는 중보기도자들을 일으켜달라고 기도합시다.

4.북한에 아버지의 마음이 풀어질 수 있도록 기도합시다.

5.북한에 선한 목자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선포합시다.


"나는 선한 목자라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거니와"

예수전도단 북한선교연대 제공

Posted by heavymango

계속되는 남북관계 경색을 우려하는 기독인의 입장

- 진정한 상생과 공영 정책의 이행을 촉구합니다 -

우리 기독인 일동은, 미국의 신정부 선출과 국제적 금융위기 등으로 한반도 정세에 중대한 변화가 오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국내적으로 이념대결이 격화되고 남북관계가 악화되어가는 현 상황에 우려를 표합니다. 이에 우리 기독인 일동은, 대한민국 정부와 사회가 예수 그리스도의 화해와 평화 사상에 입각하여 진정한 상생과 공영의 대북정책을 펼쳐 국민화합과 한반도 평화 · 통일의 계기를 선도적으로 만들어 나갈 것을 호소하며, 기도하는 마음으로 다음 사항들을 촉구하고자 합니다.

1. 우선순위를 잘 세워 분열이 아닌 통합의 정책을 추진하기 바랍니다.

경제난과 더불어 북핵 위기 및 국론 분열 등 국내·외적 어려움을 잘 해결하고, 민족의 숙원인 한반도 평화와 통일을 이뤄가기 위해서는 난제 해결의 우선순위를 잘 설정해서 추진해야 합니다. 지금은 국민화합과 함께 경제협력에 주력하면서 대북정책을 적극 모색해야 할 때입니다. 정부는 북한 및 통일문제에 대한 우리 사회의 다양한 견해들을 존중하되, 하나의 조화된 견해를 도출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그리고 국민화합을 토대로 대외 협력과 남북 협력을 이뤄가야 합니다. 따라서 일부 정치권과 언론이 민족 전체 운명에 관계되는 중대 사항들을 이념 대결적이고 낮은 단계 정치게임의 관점에서 해석하고 보도하는 태도는 지양해야 합니다. 우리는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는 정부의 고충을 안타깝게 헤아리면서도, 남북관계와 통일문제를 정파성과 정치게임의 틀에서 벗어나, 다양한 의견들을 아우르며 민족전체 이익의 관점에서 통합적으로 해석하고 다루어 줄 것을 촉구합니다.

2. 김정일 위원장 건강 이상설과 관련, 북한의 급변사태 가능성을 과장되게 강조하기보다 협력 지향적으로 대응하기 바랍니다.

북한의 급변사태 가능성을 철저하게 대비하는 일은 국민의 안녕과 질서를 보호하고 민족의 숙원인 통일을 준비하는 정부로서 책임 있는 자세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급변사태 가능성에 대해 집착하거나 공론화하는 태도는 지혜롭지 못합니다. 급변사태가 발생하기 전에 정부는 북한 지도층과 주민이 대한민국과 협력하여 통일된 새 나라를 만들어 나갈 수 있도록 북한주민의 기본적 삶의 문제에 공을 들여 나가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고 주도적인 통일의 길이 될 수 있음을 유념해 줄 것을 촉구합니다.

3. 미국 오바마 정부 출현과 관련, 한반도 정세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처해 주기 바랍니다.

미국의 신정부가 북핵 폐기 3단계 협상과 한반도 종전선언, 평화협정, 북미수교와 북미경협 등을 주도적으로 풀어나갈 가능성이 큰 만큼, 우리 정부도 <통미봉남>을 피하기 위한 소극적 정책 기조에서 벗어나, 변화되어가는 한반도 정세에 능동적으로 대응하여 줄 것을 촉구합니다. 오바마 신정부는 부시정부의 일방주의와 힘의 외교를 벗어나 국제협력과 직접대화를 통해 대북관계를 풀어갈 것입니다. 정부는 북한의 태도에 지나치게 구속 받지 말고, 여유 있고 먼저 다가서는 자세로, 정부가 이미 천명하고 있는 <상생과 공영의 대북 정책>을 진정성 있게 실천해 나갈 것을 촉구합니다.

4. 대북정책과 관련, 차별화 보다 균형적인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에 주력하기 바랍니다.

현 정부는 이전 정권의 대북정책에 대한 차별화에 너무 집착하여, 북한에 끌려 다니지 않고 퍼주지 않겠다는 원칙만을 고수한다는 인상을 주고 있습니다. 건국 이후 대한민국 정부는 각 정부마다 당면한 역사적 과제들을 성공적으로 감당해 왔습니다. 이명박 정부도 새로운 역사적 과제인 선진화와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에 집중해 주기 바랍니다. 북한이 미국과 수교하여 국제사회에 진입하고 한반도에 평화체제가 정착되면, 북한 내부에도 거부할 수 없는 변화가 예상됩니다. 따라서 북한의 내부 변화를 목표로 하는 대결 유발적 정책을 강행하기보다는 북핵 폐기와 북미·북일 수교, 경제 협력과 평화체제 정착 등 보다 유연하고 포괄적인 접근을 균형적으로 추진해 나갈 것을 촉구합니다.

5. 일부 탈북 및 민간단체의 대북 전단 살포는 중단되어야 합니다.

일부 탈북 및 민간단체의 대북 전단 살포로 남북관계가 더욱 경색되었고, 개성공단도 존폐 위기에 놓이게 되었습니다. 이 단체들의 대북 전단 살포는 납북자 송환과 북한 인권 개선 등 일견 이해할 만한 여지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로인해 야기되는 남북관계 악화는 대한민국 전체 국민의 운명에 관계되는 중대 사항으로, 일부단체에게 위임된 일이 아닙니다. 현 정부가 중시하는 <남북기본합의서> 1장에는 <상호 비방과 중상 금지> 원칙이 명시되어 있습니다. 이 원칙은 남북한 정부뿐 아니라, 남북의 개별국민에게도 그 효력이 미치는 것입니다. 대한민국 전체 국민이 신성한 안보의무에 입각해서 진중하게 검토하고 결정해야 할 중대 사항을, 국민과 국회의 동의 없이, 일부 단체들이 강행하는 것은 더 이상 방임되어서는 안 됩니다. 북한주민이 변화되는 것은 대북 전단이 아니라 차분하게 진행되는 개성공단 등 남북교류협력에 의해서라는 점도 유념해 주기 바랍니다. 정부는 대한민국 전체 국민에 대한 보다 책임 있는 자세를 보여 줄 것을, 일부 단체들은 전체 국민의 의사가 확인되지 않은 상태에서 강행하는 남북관계 악화행위를 중단해 줄 것을 촉구합니다. 북한 당국 또한 남북이산가족의 인도적 문제에 대해 좀 더 전향적인 태도를 보여줘야 하며, 북한주민의 인권문제에 대한 국제사회의 우려에 대해서도 더욱 경청하기를 촉구합니다.

6. 북한은 <통미봉남><통민봉관> 정책을 <통미통남><통민통관> 정책으로 전환해야 합니다.

북한이 대한민국 정부를 대하는 태도에는, 미국을 상대하는 과정에서 보여준 성의와 인내심을 발견하기 힘듭니다. 북한은 대한민국이 자유민주주의 국가이기 때문에 국민의 선택에 의해 정권이 교체될 수 있고, 새로운 정부가 이전과 다른 통일정책을 추진할 수 있다는 점을 이해하여야 합니다. 이명박 정부가 이전 정부와 다른 방식으로 북한을 상대하고 있지만, 현 정부 또한 북한이 남북관계 시금석으로 삼고 있는 <6․15>와 <10․4>선언의 구체적 실행을 위한 회담을 촉구한 바 있습니다. 북한이 진정으로 한반도 평화를 원한다면, 지나치게 경직된 자세에서 벗어나 유연하게 평화와 통일을 함께 만들어 나가는 모습을 보여주어야 합니다. 북한은 대한민국 대통령에 대한 비난과 남북관계를 악화시키는 조치들을 즉각 중단해야 하며, <통미봉남> <통민봉관> 정책을 <통미통남> <통민통관> 정책으로 전환하여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을 함께 만들어 가는데 기여할 것을 촉구합니다.

7. 정부는 인도적 대북지원을 즉각 재개하고, 정부예산의 1%를 한반도 통일을 위해 사용할 것을 촉구합니다.

현재 남북관계는 실사구시, 역지사지에 기초한 상호이해보다는 자가당착적인 기 싸움으로 인해 변질되는 양상입니다. 그러나 이로 인해, 인도적 지원까지 중단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정부는 그동안 북한주민에 대한 인도적 지원을 정치적 변수에 의해 영향 받지 않고 실행하겠다고 천명해 온 만큼, 북한의 선지원 요청이라는 조건을 달지 말고, 이 추운 겨울의 문턱에서 인도적 대북 지원을 즉각 재개할 것을 촉구합니다. 북녘의 우리 어린이와 노약자들이 죽어갑니다. 우리는 같은 동족입니다. 종교와 사상·이데올로기를 넘어서서 북녘동포를 살리는 것이 지금 우리가 해야 할 일입니다. 또한 정부는 매년 정부예산의 1%를 별도 배정하여, 이를 인도적 대북지원 및 개발협력 기금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국회 차원에서 정식으로 입법 추진하여 줄 것을 촉구합니다.

2008년 11월 21일

강경민 목사(일산은혜교회), 강리나(명지대학교), 강문희(서울신학교), 강빛나래, 강희라(서강대학교), 고광옥 목사(CMI), 고상환 집행위원장(교회개혁실천연대), 고형원 대표(부흥한국), 공필재(전곡제일교회), 구교형 사무총장(성서한국), 구윤회 간사(한국기독교통일포럼), 권성실(안성의료생협), 권성아 박사(평화한국 평화연구소장), 권연경 교수(웨스터민스터 신학대학원대학), 권오성 목사(NCCK 총무), 권현덕(푸른약국), 김경성(서산명지중학교), 김경아 청년(인천중앙장로교회), 김광정(서울신학교) 김광정(서울신학교), 김기만 목사(옥산포교회), 김기현 목사(수정로교회), 김길은(서강대학교), 김다애(이화여자대학교), 김명혁 목사(한국복음주의협의회 회장), 김명환 사무처장(희년운동), 김병로 교수(평화나눔재단 상임대표), 김보라(연세대학교), 김봉재 목사(평화실로암교회), 김선임(주님의나라교회), 김성락(한국항공대학교), 김성현 목사(한길성결교회), 김성호 목사(강촌교회), 김승환(영남대학교), 김연구(연세대 학생), 김영환 상임위원(공정연대), 김예진(연세대학교), 김요한 목사(CMI), 김윤희 교수(횃불트리니티), 김은희 대표(GLC children), 김인순(이화여자대학교), 김인홍 상임위원(공정연대), 김종환 목사(통일시대평화누리사무국장), 김형석 목사(재단법인 모음 회장), 김형원 목사(하나의 교회), 김흥수 교수(목원대학교), 김희정(부천산성교회), 나원주 상임위원(공정연대), 남오성 교수(웨스터민스터신학대학원대학교), 노인수 변호사(공정연대 상임위원), 동철민(성균관대학교), 무위, 문애정 청년(성진교회), 민경태(홍익대학교), 박경아(New York University), 박득훈 목사(통일시대평화누리 공동대표), 박새롬(이화여자대학교), 박소라(홍익대학교), 박소래, 박영환 교수(한국기독교통일포럼 사무총장), 박종운 변호사(평화누리 실행위원장), 박종화 목사(경동교회), 박종흔 변호사(공정연대 상임위원), 박지은(이화여자대학교), 박지혜(이화여자대학교), 박찬주(전, 복음과상황편집국장), 박창수 사무국장(한미FTA기독교공동대책위원회), 박충원, 박현희 교수(서울대학교), 방현섭 목사(좋은만남교회), 배기찬 교수(충남대학교 평화안보 대학원), 배윤정(이화여자대학교), 선정은(이화여대 학생), 손화철 교수(한동대학교), 송봉진 목사(예수로교회), 신남호(용인대학교), 신덕수 고문(평화한국 평화연구소), 신동호 간사(부흥한국), 신미숙 간사(부흥한국), 신은경(이화여자대학교), 심우섭(장신대 신대원), 심유진, 안기홍 사무국장(기독청년아카데미), 안동규 상임위원(공정연대), 안만수 목사(화평교회), 안부섭 대표(TNF비전아카데미), 안인섭 교수(총신대학교), 양영식 학장(한기총 통일선교대학), 양진일 목사(공정연대 상임위원), 양희송 상임위원(공정연대), 오규성(한동대학교), 오은찬(이화여자대학교), 오일환 박사(한양대학교), 우남힉 목사(CMI 대표), 유경재 목사(안동교회), 유관지 목사(북한교회연구원 원장), 유전원(자양교회), 윤경로 총장(한성대학교), 윤아정(이화여자대학교), 윤은주 국장(평화한국), 윤환철 사무국장(한반도평화연구원), 음장복 변호사(공정연대 상임위원), 이경민(연세대학교), 이관우 목사(C.C.C젖염소보내기운동본부 국장), 이광하 편집장(복음과상황), 이국운 교수(공정연대 상임위원장), 이동열(항공대학교), 이민경(정우개발), 이민환(작은목자들교회), 이상석 변호사(공정연대 상임위원), 이성식(대한상공회의소), 이성영 간사(희년운동), 이수연(이화여자대학교), 이승균 편집장(뉴스앤조이), 이영주(이화여대 학생), 이영훈(여의도순복음교회), 이옥기 목사(UBF 총무), 이온유(홍익대학교), 이윤재 목사(분당한신교회), 이윤정(서울신학교), 이은정(관양고등학교), 이인동(안성농민의원), 이정원(이화여자대학교), 이제학(명지대학교), 이준배(이음교회 목사), 이지은, 이찬민(숭실대학교), 이한생(홍익대학교), 이현정 목사(UBF 대표), 임여호수아(연세대기독윤리), 임완철 목사(전북학원복음화협의회총무), 임지은(사랑의교회), 임현순(항공대학교), 장윤주(홍익대학교), 장재규(항공대학교), 정다울(이화여자대학교), 정도열 목사(CMI), 정석광 목사(부흥한국), 정애라(순천북부교회), 정재호 목사(춘천성시화운동본부 사무총장), 정종훈 교수(연세대학교), 정지웅 박사(통일미래사회연구소장), 정환빈(연세대학교), 조기연 목사(한기총 통일선교대학 교육국장), 조동진 목사(조동진선교학연구소장), 조민철(공정연대), 조성기 목사(교단장협의회 사무총장), 조영민 정책위원장(희년운동), 조영춘 목사(예광침례교회), 조용기 목사(여의도순복음 교회), 주도홍 교수(기독교통일학회 회장), 지건정(이화여자대학교), 차덕수 목사(강원침례교회), 최갑주 공동대표(통일시대평화누리), 최경아(서강대학교), 최대석(이화여자대학교), 최상도 목사(사암성결교회), 최숙영(샤론교회), 최욱(서울신학대학교), 최윤(이화여자대학교), 최윤원 국장(평화한국), 최윤정(포도원교회), 최은상 목사(공정연대 사무처장), 최의팔 목사(서울외국인노동자센터대표), 최철호 대표(생명평화운동), 최희범 총무(한국기독교총연합회), 표명렬 상임대표(평화재향군인회), 표종록 변호사(공정연대 상임위원), 피종호 목사(춘천나눔교회), 하영호(서대문ESF), 한경호 목사(횡성영락교회사), 한면희(전북대학교), 한명수 목사(6.15남측위원회 경기본부 상임대표), 한병선 대표(한병선영상만들기), 한인권 박사(재단법인 모음 운영이사장), 허광(온누리교회), 허재훈(경희대학교), 허문영 박사(평화한국 대표), 홍상의(화평교회), <가나다 순, 2009년 2월 18일 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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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 4. 7. 16:36

책 썸네일북한의 기아

저자: 나초스| 황재옥 역

출판사: 다할미디어

출판년도: 2003년

분량: 371페이지

대표적 국제구호기관이며 NGO인 월드비전의 부의장과 미국 평화연구소 상임연구원을 지낸 나초스의 이 <북한의 기아>라는 제목으로 번역, 출간되었다.

1990년대에 일어났던 재난 중 인류 역사상 가장 끔찍한 재난이었다고도 말할 수 있는 '북한의 기아'에 대해 당시 저자 나초스가 월드비전 부의장 자격으로 북한을 방문하여 그곳에서 직접 체험한 북한의 기아 실상을 생생히 전달하고 있다. 책은 총 3부로 구성되어 있는데 1부에서는 북한 기아의 실상, 2장에서는 북한 기아에 대한 국제사회의 반응, 제3장에서는 북한 기아의 영향에 대해 서술하고 있다.

책 가운데는 많은 식량 난민들의 참혹한 증언들이 담겨 있다. 자유세계에 살고 있는 우리는 북한 주민의 고통을 정확하게 알고 관심을 가져야 한다. 물론 정치적 문제, 경제적 사안, 인도주의 차원의 대북지원의 균형 등의 딜레마가 앞에 놓여있긴 하지만 민족의 생존과 번영이라는 대전제 하에 북한 문제를 고민해야 할 것이다.

Posted by heavymango